▲ 김병현 강원도교육청 파견교사
▲ 김병현 강원도교육청 파견교사
2학기 들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다.아침 7시 반에 시작하는 부지런한 공부.처음이라 당연히 초급반을 신청했는데,원어민 선생님이 중급반을 가도 좋겠다 말씀하신다.조금은 우쭐해진 마음으로 중급반으로 옮겼는데,‘아뿔싸…’ 함께 수업 듣는 선생님들 실력이 장난 아니다.

영어 교사 출신부터 십 수년 간 영어 공부를 한 선생님까지.저절로 마음이 작아지고,자신감이 떨어졌다.초급반에서는 신나게 떠들던 내가,질문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교실에서 학습이 뒤처지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두렵고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사실 학창 시절 늘상 공부를 잘했던 내게 이런 마음은 낯설기까지 하다.서툴게 입을 떼면 다른 선생님들이 ‘실력도 없으면서 왜 중급반에 왔대’하고 비웃을 것만 같다.‘뒤처지는 아이들 마음을 하나도 모른 채 선생 일을 했구나….’미안해진다.문법도,맥락도 엉망으로 힘겹게 자기 소개를 마치자 원어민 선생님이 말한다.

“잘했어요.여긴 경쟁하는 곳이 아니에요.언어는 경쟁이 아니에요.옆의 친구가 더 잘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중요한건 내가 얼마만큼 성장하는가예요.”

아침부터 머리를 쿵 맞은 듯한 충격.나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공부했던 적이 있었나?

아이들에게는 항상 그럴 듯하게 ‘네가 바로 서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정작 나는 주변 눈치를 안 보고 공부한 적이 있었던가.

평온하게 웃으며 공부는 경쟁이 아니라고 말하는 낯선 이방인의 체득된 철학이 질투 날 정도로 부러웠다.동시에 움츠리던 어깨가 조금은 내려가며 정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옆 선생님들의 눈빛이 경시(輕視)에서 응원으로 바뀌어 보였다.틀려도 좋았다.모르니까 배우기 위해 온 것이다.이 공간에서 ‘경쟁’이란 낱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교실에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났다.줄 세워서 성적이 나오고,그 성적으로 등급이 갈리고,대학이 결정되는 철저하고 치밀하며 처절한 시스템 속에서 “이건 경쟁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중요한 건 네가 얼마나 어제보다 성장했느냐야”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면, 1등도, 30등도, 아니 등수로 말하지 말고, 승준이도, 나래도 가슴의 콩닥거림을 멈추고 편하게 수업의 주인공이 될 것만 같다.

많은 교육정책이 입시의 용광로에서 변질되고 말지만,배움을 통해 성장한다는 ‘공부의 이유’ 만큼은 교실에서 사라지면 안 될 것이다.

생각해 보니 원어민 선생님은 ‘영어 공부의 목적’부터 우리에게 물었다.좋은 성적도,그것을 통한 입시도 필요 없는 내 공부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경쟁 없는 낯선 공부를 통해 그 목적을 찾아야겠다.그리고 학교로 돌아가면 오늘 내가 배운 것을 꼭 아이들 가슴에 심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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