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이사람] 화천 부부가수 ‘해와 달’
발달장애 둘째 아들 위해
전국서 음악 봉사 활동
3년 전 화천에 둥지
새 음반 ‘아름다운 산천’ 준비

[강원도민일보 이수영 기자]북한강 상류에 둥지를 튼 부부가수 ‘해와 달’.음악과 자연을 사랑해 낯선 땅을 찾았던 홍기성(63)·박성희(60)씨 부부의 일상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꿈과 생활의 경계에서 괴리감을 느끼고,크고 작은 난관들과도 마주한다.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음악은 숙명이고 화천이라는 공간도 그렇게 다가왔다.고단한 삶 속에서도 음악의 꿈을 쫓아가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부라더스’의 후속편을 보는 듯한 이들 부부의 인생 역정과 ‘화천살이’를 들여다본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도 나는 당신을 만나고 싶소.주어도 아직 다 못 준 사랑 남아있기에~”(해와달 2집 ‘축복’ 중) 화천군 하남면 산기슭의 하얀색 건물.북한강 물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 이 곳에선 어김없이 포크송이 흘러나온다.매주 수~일요일 오후 2시와 8시에는 관객 수에 관계없이 공연이 시작된다.공연장과 카페가 함께 있는 이 곳은 듀엣 부부가수 ‘해와 달’의 음악캠프이자 보금자리다.

“비록 한명의 관객이라도 우리 공연에 행복할 수 있다면 언제든 노래를 부르지요.” 해님 홍기성(63)씨는 3년 전에 마련한 이곳 공연장에서 아내 달님과 음악인생 2막을 열고 있다.

젊은 시절 미8군과 서울,부산 등 전국 무대를 누비던 홍 씨는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던 지금의 아내 박성희(60)씨를 스카우트 한다.이후 부산을 중심으로 자신의 밴드 ‘굿타임즈’ 를 결성해 밤무대도 마다 않고 노래를 불렀다.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주변의 권유로 서울로 진출했다.방송국 악단생활을 하며 1999년 아내와 함께 첫 앨범 ‘그대사랑 내 곁에’를 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그러나 이듬해 발표한 2번째 앨범 ‘축복’은 입소문을 타며 가요계의 화제를 모았다.아름다운 노랫말로 당시 결혼식 축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축가를 불러달라는 제안이 계속 들어와 노래하는 기쁨을 맛본 시간이었지요.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곡이었는데,이 것 때문에 밤무대에서는 금지곡으로 통했어요.너무 건전한 게 흠이었죠.우리 부부의 대표곡을 무대에서 부를 수 없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긴 거지요.하하.”

이렇듯 왕성하게 활동하던 ‘해와 달’ 부부에게 음악인생의 큰 변곡점이 찾아왔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들이 2살이 되면서 발달장애라는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부부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간의 음악활동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된다.고심 끝에 부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활동을 펼친다.장애인들을 위한 모금콘서트에 올인한 것이다.밤에서 낮으로,실내에서 야외로 무대도 바꾸었다.

▲ 포크가수 해와달 홍기성,박성희 부부가 화천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포크가수 해와달 홍기성,박성희 부부가 화천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좋은 일을 하면 아들이 나아지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어요.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음악을 시작했지요.” 장소가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서울역 광장에서,지하철역에서,때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언제든 어디든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전국을 떠돌던 해와 달 부부는 모금 공연의 상설 무대를 남이섬으로 정한다.섬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둘째 아들의 상태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기도처럼.그리고 그 과정에서 음악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했고,음악 봉사활동에 보람이 커져갔다.

그렇게 남이섬에서의 생활은 순조로웠지만 부부는 또 다른 결심을 한다.북한강 상류 화천을 자신들의 음악명소로 만들고 싶다는 구상이다.또한 자연과 음악의 조화를 맞추고 북한강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자신들만의 퓨어뮤직을 선보이고 싶은 생각이 더해졌다.때마침 화천군 쪽에서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으면 하는 제안도 있었다.7~8년 전의 일이다.화천의 한 농가를 빌려 주말에만 생활하던 홍 씨는 그곳에 통기타교실을 열어 함께 화천에 음악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던 해와달은 3년 전 마침내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 언덕에 하얀색 공연장을 지었다.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빚을 지며 무리를 해 음악캠프를 완성한 것이다.정착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외지인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심,그리고 무슨 특혜를 받고 있다는 오해 등이 섞여 한동안 불편한 상황들과 맞닥뜨려야 했다.그러나 지금은 이들의 음악과 진심을 믿어 응원하는 지역의 팬과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힘든 거 생각하면 끝이 없지요.그렇지만 화천의 자연을 음미하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음악하는 즐거움은 매우 소중해요.상업성으로 찌든 도시의 유행가 대신 예쁜 가사와 깨끗한 음악을 할 수 있게 됐지요.”소문 듣고 이곳을 찾는 관객과 팬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면 화천을 쉽게 떠날 수 없다고 부부는 말한다.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부부는 수시로 삐걱대기도 한다.그러나 노래를 부르며 화음을 맞추다보면 다시 한마음이 된다.부부에게 음악과 노래는 목적이기도 하지만 과정이기도 하다.

요즘은 지역사회와도 활발한 교류활동을 하고 있다.쪽배축제와 산천어축제 등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인다.오지의 어르신들에게도,전방의 병사들에게도 행복한 음악을 선사한다.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며 아픔을 나눈다.부부는 화천에서 음악생활을 계속하며 음반도 낼 계획이다.새 음반에는 화천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산천’도 준비 중이다.기회가 되면 지금도 교류하고 있는 양하영과 해바라기,소리새,서유석,진시몬 등 포크가수도 초청할 생각이다.평화와 행복을 노래할 자리를 만들어 아담한 콘서트를 하는 것이 부부의 소박한 꿈이다.지난해엔 주민들이 참여하는 ‘노래마을’이라는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요즘 연말 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화천에 둥지를 튼 이후 부부에게 뜻 깊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군대 가는 게 소원인 둘째 아들에게 지역 사단의 도움으로 명예전역을 증명하는 군번줄을 선물한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이수영 sooyou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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