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철 춘천기계공고 교사

▲ 신준철 춘천기계공고 교사
▲ 신준철 춘천기계공고 교사
도심 곳곳에 대형 빌딩이 들어서고 우리들의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은 아파트도 금방 하늘에 닿을 듯이 높게,높게 들어서고 있습니다.내가 자라고 성장하면서 추억을 지녔던 곳들의 흔적이 하나 둘 점차 사라지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학을 다니고 군 입대 그리고 취직으로 20여 년간을 고향을 떠나 있다 뒤늦게 직업을 바꿔 고향을 다시 찾았던,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주말에 부모님 댁을 방문했는데,마침 어머님께서는 어디론가 외출할 차비를 하셨기에 자연스레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어머니는 아직도 옛 풍경을 간직하면서 이곳 지역의 명물거리로 남아 있는 5일마다 열리는 풍물시장에서 장을 볼 참이었습니다.

중학교 때인가?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이다음에 장가들면 색시를 도와주어야 한다며 당신께서 장을 보실 때에는 아들 두 명과 함께 다니시며 장 본 물건을 들게 하셨기에 거리낌 없이 어머니를 따라 풍물시장을 구경삼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대형마트와 시내 곳곳의 편의점에 밀려 이제는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풍경들을 아직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올챙이국수로 끼니를 때우는 상인들,중국 문자에 가까운 국적 없는 한자를 써 놓고 건강에 좋다는 보기만 해도 혐오스러운 바짝 말린 굼벵이,지네 등 온갖 벌레들을 파는 곳,시골 텃밭에서 키웠음직한 채소와 나물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시골 할머니들,바닷가에서 갓 올라온 듯이 팔딱이는 싱싱한 수산물,시장 모퉁이에서는 연신 강냉이 튀기는 뻥~소리가 들려오고 대낮임에도 술타령을 하는 사람들로 붐비고,파전이 노릇노릇 익어가며 시큼털털한 막걸리 내음이 물씬 풍기는 골목을 따라 지나는데 어디선가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전해져 왔습니다.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번데기 냄새였는데 순간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지갑을 안가지고 갔던 터라 어머니에게 사달라고 조르고 말았습니다.어머니는 설마 다 큰 아들이 번데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게 장난인 듯싶어 “진짜니?” 물으셨습니다.

“그러다 학생들이 보면 어떡하려고?”

“어머니, 학생들이 아직 저 몰라보니 괜찮아요.”

직업을 바꿔 교직에 입문한 첫 해라 제자들이 별로 없었기에 자신 있게 대답하였지만, 그 때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교직에 30여년을 몸 담으셨던 어머니셨기에 교사에 대한 품격을 강조하셨지만 20여년 만에 부모 곁으로 온 자식의 청을 물리치긴 힘 들으셨는지 번데기 장수와 곧 흥정에 들어가셨습니다.일회용 종이컵에 수북이 담긴 번데기에서는 어렸을 적 운동회와 소풍 등의 행사마다 코를 자극하던 냄새와 고소함이 옛 추억과 함께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억을 잠시나마 향유할 수 있었던 그 때의 풍물시장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남춘천역 주변으로 이전했습니다.도시적으로 개발된 약사천 수변공원을 지나가다 문득 오래 전 풍물시장 모습이 눈에 떠올랐습니다.그 당시 재개발을 이유로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여기저기 헐리고 공터로 썰렁하게 남아 있던 풍물시장 터를 상상해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고자 번데기를 사달라고 조르던 내 모습이 철없다고 하기 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정을 나누던 예전의 시장 풍경을 왠지 잃고 마는 듯싶은 허전함이 마음 속 깊이 다가왔습니다.삭막하고 각박해져가는 현대인의 삶을 나무라는 듯,“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다”라는 어느 노래가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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