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음악평론가·6인 비평가 그룹 간사

▲ 이영진 음악평론가·6인 비평가 그룹 간사
▲ 이영진 음악평론가·6인 비평가 그룹 간사
임원식,홍연택,김생려.국내 오케스트라의 1세대 지휘자들이다.임원식은 KBS교향악단을 창단했고 홍연택은 국립교향악단과 코리안심포니를 출범시켰다.김생려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초대 지휘자를 역임한 이다.강원도내 공립오케스트라는 이들 1세대 지휘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로부터 대략 30년 전후쯤 발원했다.

대개 중소도시 공립교향악단은 그 지역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이들로 구성된다.지휘자도 그 지역 출신이 주로 활동해 왔다.이런 프레임을 십여년전 원주시향이 깼고,춘천시향이 흐름을 이어갔다.아직 강릉시향만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이 류석원 상임지휘자다.연령만으로 보면 원로급에 다다랐으나 연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온 지휘자에 속한다.그래서 마이너리티쯤으로 바라보기 쉽다.그러나 그것은 불찰이다.류석원의 음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강릉아트센터에서 강릉시향의 ‘송년음악회’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이 연주됐다.매년 비슷한 시기 국내 많은 교향악단이 앞다퉈 연주하는 레퍼토리다.올해도 서울시향,경기필,부천필,수원시향이 송년연주회로 연주했거나 앞두고 있다.강릉시향도 지난해에 이어 단일 프로그램으로 연주했다.평자(評者)도 일년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연주한 ‘합창 교향곡’을 듣고 비평하는 입장이 된 셈이다.이런 경우,오랜 기간 악단을 이끌어 온 지휘자가 시차를 달리 해 같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관찰할 기회가 주어진다.지난 해에 비해 템포의 변화,즉 악곡 흐름의 완급조절이 얼마나 유연해졌는가.현 파트 보우의 정밀함과 에너지가 어느 수준으로 향상됐는가.관과 현이 균형있게 조화했는가.기악과 인성(人聲)의 앙상블이 제대로 이뤄졌는가.베토벤의 음악어법과 작품을 관통하는 푸가의 큰 줄기를 어떻게 도출했고,그의 음악철학을 어떻게 승화시켰는가.앙상블의 구조미와 사운드는 잘 조련했는가?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연주회 내내 검증,비교하는 일이 평자의 몫이다.

이날 강릉시향의 ‘합창 교향곡’에는 국립합창단과 강릉시립합창단이 4악장을 함께했고 박현주,양송미,양영배,김종표가 독창자로 참여했다.첫 악장부터 종악장까지 모든 연주자의 집중력이 돋보였다.한마디로 이날 류석원이 만들어 낸 베토벤의 ‘합창’은 지방 공립교향악단이 이뤄낼 수 있는 연주력 수준을 뛰어넘은 호연,‘합창 교향곡’의 완결판처럼 느껴진 명연이었다.왜 류석원이 베토벤에 집착해왔고 십 수년 전부터 베토벤 사이클을 통해 강릉시향을 연마해 왔는가를 검증한 격이 다른 연주였다.강릉시향의 환희의 송가가 대관령을 넘어 널리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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