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간간이 눈과 비까지 내리면서 곳곳이 빙판이다.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기 예사다.겉으로 멀쩡한 곳도 방심하다가는 배신을 당하고 허를 찔린다.이럴 때는 몸을 낮추고 보폭을 줄이고 설설 기는 것이 상책이다.고개를 뻣뻣이 들고 거드름을 피우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살얼음판 같은 데서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생생한 가르침을 자주 접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증자(曾子)라는 인물이 있다.논어 맹자 중용과 함께 사서로 꼽히는 ‘대학’을 지은 사람인데,이름은 삼(參)이요 자는 자여(子輿)다.공자→증자→자사→맹자로 이어지는 공자 사상의 정통을 이은 핵심 인물이다.그는 말년에 병석에 눕게 되자 제자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고 전한다.시경(詩經)에 “전전긍긍하기를 깊은 못가에 서 있듯,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는 말이 있는데,이제 서야 이런 걱정을 면하게 됐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기를 난감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삼가는 것을 전전긍긍한다고 하는데,여기서 나온 말이다.증자가 인용한 시경(詩經)의 이 대목은 소아(小雅)편에 나오는 ‘소완(小宛·비둘기)’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주(周)나라가 끝나갈 무렵 학정을 이렇게 풍자한 것이라고 한다.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와 시국의 어지러움을 한탄하며 위로는 부모를 생각하고 아래로는 자식을 키우는데 경계하고 또 삼가겠다는 다짐이다.증자가 한평생을 그런 노심초사의 삶을 살아왔고,생을 마감하는 때에 이르러 시름을 놓게 됐다고 털어놓고 있다.자신의 일생에 대한 회고이자 제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세상을 지나치게 겁낼 것도 없지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다.거칠 것 없이 씽씽 내달릴 수 있던 탄탄대로가 날이 궂고 추위가 닥치면 빙판으로 변해 아수라장이 된다.시대가 바뀌었으나 돌아보니 도처가 살얼음판이다.관리부재의 고속도로만 그런 게 아니다.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안보도 그렇다.다시 봄이 올 때까지는 이 아찔한 얼음판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전전긍긍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겠다.

김상수 논설실장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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