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광 복 논설위원

 고군산군도 24개 섬 중 가장 큰 섬, 신라시대 청어 잡이 김해 김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역사의 섬, 전북 군산시 옥도면의 신시도(新侍島)는 '새만금'의 배꼽에 해당하는 섬이다. 그 섬에 갔을 때, 모두들 "뱃길로 50분을 자동차로 10분에 가게 됐으니 우리도 뭍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새만금'은 계속돼야 하고, 환경단체는 새만금 반대 데모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섬까지 불과 2.7㎞를 남겨놓고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중단됐다. 방조제 끝, 쌓다 만 흙더미가 빠른 물살에 무섭게 씻겨나가고 있을 것이다. 섬사람들의 마음이 지금 씻겨나가는 그 흙더미 같을 것이다. 그동안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지 따위가 문제이지 않을 것이다. 13년 간 들인 쌓아놓은 정성, 희망 기대가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 그 참담한 심경을 주체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수경스님 문규현 신부의 300㎞ 삼보일배 장정엔 온 나라가 찬사와 감탄과 격려가 쏟아졌다. 그때 '새만금'에 쏟아지던 멸시 천대 조롱의 눈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축배를 들고 있을까. 부안 위도에 방사성 폐기물장 유치하겠다고 신청한 것은 정말 온 국민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20년 최장기 미제(未濟)국책사업을 전북에서 풀었다. 그러나 2조원의 지역개발지원금을 받기로 한 것을 놓고 누군가 "당신들은 '죽음의 거래'를 했다"고 속삭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 유치하면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먹고산다고 부추기던 사람들이 지금 속으로 킬킬대며 웃고 있지는 않을까. 전북은 지금 격앙돼 있다.
 먼 전라도 땅 얘기가 멀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마 동병상련일 것이다. '2010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하기 위해 별별 묘안을 다 짜내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부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아름다운 패배라고 하더라도 패배는 패배다. 그런 상심을 애써 달래려는데, 패배한 것을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후려 쳐 졌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 아니라, 평소 믿지 못하겠던 김운용 IOC 위원이 기어코 방해를 했거나 제대로 안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새만금'이 중단되자 김영진 농림부장관은 항의 표시로 사표를 냈다. '새만금'엔 그런 소신파 각료라도 있었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계에 한국이 개망신 당하고 있는 작금의 이 '깽판'에 대해 주무장관인 이창동 문광부장관은 사표 비슷한 액션도 없었다. 강원도의 그런 열등감이 전북의 열등감에 측은지심의 눈길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라도가 멀지 않은 것은 동계올림픽의 함수관계 때문일 것이다. 강원도는 전북에 2010년을 양보 받은 빚이 있다. 그 과정이 어떻든, 단서조항이 어떻든 '2010 평창, 2014 무주'로 사이좋은 관계처럼 약속했다. 그러나 단 3표 차, 그것도 처음에 알고 있던 것처럼 유럽권의 담합 때문만이 아니고, 누군가의 훼방으로 표를 도둑 맞고도 결과가 그렇다면 설욕하고 싶은 욕심이 안 난다는 게 더 이상하다. 그렇더라도 당장 김운용씨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면서 '2014 평창 재도전' 작전을 전개했다면 금새 속내가 들통 날 바보짓이다. 그런데도 김운용씨는 평창이 무주와의 약속을 파기하려는 빌미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해 버렸다. 김운용씨의 프라하 훼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김씨 자신만 아는 것처럼, 평창과 무주를 싸움 붙이고 자신은 빠져나가려고 한 것인지는 김씨 자신만 아는 얘기다.
 그의 그런 판세전개가 평창과 무주를 마치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두 약소국 신세로 만들어 버렸다. 두 나라가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전쟁을 하는 불행처럼 평창과 무주는 지금 누군가로부터 안타까운 충돌을 사주 받고 있는 게 틀림없다.
 지난 9일 무주읍 예체문화관에 모인 5000여명의 무주군민 동계올림픽 유치결의는 대단한 열기였다. 이날 김세웅 무주군수는 김진선 강원도지사로부터 약속이행 각서를 받아내겠다고 '걸어서 춘천까지'' 338km 장정에 나섰다. 30명의 이 천리 행진단은 7일 째인 15일엔 경기도 화성 병점 성당, 10일 째인 18일엔 서울에 입성했다. 그날 서울에서 결의대회로 에너지를 보충해 23일 께 춘천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김진선 지사가 꽝꽝 도장을 찍어줄리 없다. 먼길을 걸어온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2014년을 넘겨주자고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날 도청광장의 그 광경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이 기상천외의 담판을 아이들이 벌이려 한다면 어른들이 말렸을 것이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리지 않는 것일까. 다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야 한다. 평창이든 무주든, 때론 기회주의자처럼, 때론 폭군처럼, 때론 아첨꾼처럼 표변하는 이 나라 정치꾼들의 농락에 당하는 정치희생자라는 것이다.
 
 함광복 논설위원 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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