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남 시인

▲ 정일남 시인
▲ 정일남 시인

연암 박지원을 생각해 본다.‘가슴 속에 가득 차 있는 답답한 응어리를 한꺼번에 풀어 내리는 데는 울음만큼 특효약이 없다’고 연암은 말했다.울음에 대한 해박한 발상이다.

서러울 때 마음 놓고 실컷 울고 나면 속이 확 풀린다.근심하는 사람은 살이 빠지지만,실컷 울고 나면 살이 찐다는 말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닌 것 같다.인간에겐 웃음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울음도 웃음만큼 요긴한 것인지도 모른다.울음이 없는 사회는 얼마나 삭막한가.

연암이 열하로 가는 길에 요동 땅에 이르렀다.사방을 둘러보니 산을 찾을 수 없는 망망한 벌판이었다.그 많은 산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해가 지평에서 떴다가 지평으로 지고 있었다.태어나서 살아왔지만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이런 세계도 있단 말인가.

‘참으로 좋은 울음 터로다.한바탕 울어볼만 하구나.’

조선의 좁은 땅에서 산만 보고 살았던 연암은 요동 땅에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울음이란 슬플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깨달음이 덤벼들 때나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힐 때도 눈물겹다.울음이란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빠뜨릴 수 있었던 연암이었다.

요동의 산해관 일천 이백 리까지의 어간은 사방에 한 점 산을 볼 수가 없었다.하늘과 땅은 풀로 붙인 듯 했다.열하로 가는 연암의 첫 번째 울음 터였다.

연암은 조선 땅에서 한바탕 울음을 울 만한 곳으로 두 곳을 꼽았다.첫째가 비로봉 정상에서 동해를 바라볼 때이고,둘째가 황해도 장연 바닷가의 금사산(金沙山)이 가장 울 만한 곳이라 말했다.그러니까 연암은 누님이 죽어서 상여가 강을 건널 때 울기도 했지만,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실컷 울었던 셈이다.

울음은 누구의 지시에 의해 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격하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리라.울음을 울다가 끝내는 것도 누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울음이 인간 삶에 중요한 필수 요소란 것을 배운다.연암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아이가 어미 뱃속에서 자리 잡고 있을 때는 어둡고 갑갑하다.그렇게 비좁은 곳에서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탁 트인 세상으로 빠져 나오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어 정신이 시원하게 될 터이니 어찌 한 번 감정이 다하도록 참된 소리를 질러보지 않을 수가 있으랴.그러니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는 거짓이 없다는 것을 본받아야 하리라.’

아이가 태어나서 우는 울음 소리를 아이의 본성을 훤히 깨달은 듯 연암의 해석이 살갗을 파고든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울음이 없는 사회가 된 것 같다.시인들이 쓴 시도 그렇다.박용래 시인은 술만 마시면 울었다.홍래 누나가 아기를 낳다 죽어서 울게 되었다.그는 꽃이나 풀이나 호드기 소리나 종다리 소리나 누리의 온갖 것을 보고 울었다.어쩌면 오늘의 시는 너무 거칠고 뻔뻔해 지지 않았는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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