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생존본능은 이웃을 이방인으로 범죄자로 만든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의심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춘천 명동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관광을 하고 있다.  방병호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의심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춘천 명동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관광을 하고 있다. 방병호

 

어디에선가 분명 봤던 이야기,

우리 눈앞에 명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은

정유정의 소설 ‘28’과 그 소설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 ‘감기’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모든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퍼지는 이 재난도

새드엔딩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설에는 국내의 뉴스와 교통정보보다 중국에서 퍼지고 있는 폐렴이 더 큰 뉴스가 되었다. 중국에서 우한폐렴(武漢肺炎)으로 인한 감염자와 사망자가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국내에서도 우한폐렴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그 불안감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중국의 한 도시 ‘우한’에서 비롯된 폐렴에 대한 공포는 중국의 민족대이동 춘윈(春運)의 풍속도마저 바꾸어놓았다. 전염 속도가 빠르고, 사람 간 전염이 확인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봉쇄’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고속도로와 항공편이 중지되었다. 이제 우한으로는 들어갈 수도, 우한에서 나올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한폐렴 확진자는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감염자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원래 중국의 춘졔(春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민족의 이동이 있는 때다. 중국인에게 춘졔는 거리와 마트를 가득 메운 붉은 등과 글씨, 시원하게 터지는 폭죽 소리로 물들어 있는 시끌벅적한 시간이다. 그러나 봉쇄되고 통제된 우한의 설은 붉은 등과 빨간 봉투, 폭죽이 터지며 새해를 알리는 축포와 거리가 먼 명절이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우한의 뉴스와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재난영화의 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었다. 쓰나미,전염병 등은 재난영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영상 속,커다란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 위로 보이는 사람들의 눈은 불안해 보였다. 시끌시끌하고 붉어야 할 도시는 이미 조용한 잿빛이었다.

전염병, 불안, 도시의 위기, 괴담과 소문, 사람들의 공포.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재난영화의 현실에 잘 맞아 떨어진다. 감염자는 격리되고, 사진과 영상은 검증할 틈도 없이 업데이트된다. 여기에 사람들이 불안을 자극하는 조작된 자료와 괴담, 정보가 더해지면서 도시는 얼어붙는다.

이미 몇 명의 국내 우한폐렴 확진자가 나온 만큼, 우리의 관심도 온통 그쪽에 쏠려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전염되지 않는지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우한 폐렴의 원인이라고 알려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한 연구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우한의 야생동물 시장에서 먹거리로 사용되는 동물들을 지목하였다. 우한의 화난시장에서 먹거리로 거래되는 야생동물은 뱀, 박쥐, 여우, 낙타, 캥거루, 공작새 등 우리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그 기사 아래로는 뱀과 오소리 등이 자료 사진으로 제공되었다.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통 안에 우글거리는 뱀들, 모자이크 처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야생동물의 사체는 우한 폐렴을 한층 더 위험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런 사진과 영상에 ‘미개’, ‘원시’ 등의 수식어가 여과 없이 덧붙여지면서, 중국인의 민족성까지 들먹여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우한폐렴에는 혐오의 감정이 더해지고, 대중의 불안감은 크게 증폭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입국을 불허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동의를 얻어낼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공포는 새로운 나(우리)-너(너희)를 구분 짓는 기준을 만들어낸다. 공포 앞에서는 이웃도 쉽게 이방인이 된다. 우한폐렴에 전염된 국민은 기침을 하는 순간,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우한에서 돌아와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던 내국인 감염자의 모든 동선과 사적 정보들이 신문과 뉴스를 통해 전국으로 보도되었다.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염자의 신상도 털리고 있는 중이다. 뜻밖의 재난을 만난 사람들의 공포와 생존본능은 어제까지의 이웃을 쉽게 이방인으로, 범죄자로 만든다.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폐 질환, 그러나 한 도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사람 간 전염이 되며, 치사율이 높아 사망자가 속출하는 끔찍한 질병의 확산, 결국 도시는 폐쇄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경계해야 하는 잔인하고 혹독한 현실. 분명 이번 우한폐렴이 만든 풍경이 틀림없는데, 이상하게도 기시감이 느껴졌다.어디에선가 분명 봤던 이야기, 우리 눈 앞에 명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은 정유정의 소설 ‘28’과 그 소설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 ‘감기’의 또 다른 버전이라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우한폐렴과 관련된 소식을 보고 듣고 있자니 진행 중인 영화 한가운데 있는 듯한, 불안과 공포가 만져지는 듯했다. 그러면서 영화 ‘괴물’,‘부산행’,‘해운대’,‘터널’ 등 수많은 재난영화가 떠올랐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재난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결이 다른 재난이지만, 그 고통을 서로에게 기대 버텨낸다는 스토리. 무시무시한 재난 앞에서 인간은 초라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 사이의 사랑, 연민, 헌신, 희망 등은 그 재난을 새드엔딩으로 끝내지 않는다. 모든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퍼지는 이 재난도 새드엔딩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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