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장

▲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장
▲ 이학주 한국문화스토리텔링연구원장
조선중기의 학자 홍만종이 쓴 ‘순오지(旬五志)’에는 햇빛을 보지 못하고 땅속에만 사는 두더지 이야기가 나온다.‘두더지의 혼인’이란 제목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두더지 한 마리가 혼인하고 싶은데 제일 높은 데 있는 자와 하고 싶었다.두더지 생각에 제일 높은 데 있는 자는 하늘이었다.그래서 하늘에 올라가 “저랑 혼인해 주십시오”라고 청혼했다.그러자 하늘은 “내가 비록 온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면 나의 덕을 드러낼 수 없으니,나보다 더 높은 것은 해와 달이다.해와 달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두더지는 해와 달을 찾아가 청혼했다.해와 달은 “구름이 가리면 밝을 수 없으니 나보다 더 높은 것은 구름”이라고 했다.두더지가 구름을 찾아가니 구름은 “바람 불면 모조리 흩어지니 바람이 더 높다”고 했다.바람을 찾아가니 바람은 “저기 서 있는 돌부처는 움직일 수 없으니,돌부처가 더 높다”고 했다.두더지는 돌부처를 찾아가 청혼했다.돌부처는 “바람은 두려울 것 없으나 오직 두더지가 내 밑을 뚫고 들어오면 자빠지는 것은 면할 수 없으니,사실은 두더지가 더 높다”고 했다.이 말을 들은 두더지는 가만히 잘난 체하며,“천하에 제일 높은 것은 나다.나보다 더 높은 자가 있거든 나서보라”고 했다.그리고 마침내 같은 두더지끼리 혼인했다.

이 이야기는 두더지의 바람처럼 아주 높은 지혜를 주고 있다.첫째는 세상에 제일 소중하고 높은 자는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먼데 것,남의 것은 절대 내 것이 될 수 없다.두더지는 두더지와 혼인해야 하듯 남 넘볼 것 하나도 없다.나 잘난 맛에 살면 된다.알콩달콩 나를 아껴주는 가족과 행복한 삶을 이어가면 된다.세상의 부자 부러워 말고,세상의 명예도 부러워하지 말자.그들의 부와 명예는 절대 나에게 그냥 주지 않는다.그들의 것일 뿐이다.

둘째는 나를 알아 분수를 지켜 만족하면 편하다는 사실이다.두더지가 분수를 지켜 두더지와 혼인하고자 했으면 멀리 하늘부터 돌부처까지 찾아다니며 아쉬운 소리를 안 해도 되었다.그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다.땅속 두더지가 하늘로 가고,해와 달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쓸데없는 공력을 낭비했을까.그들은 두더지를 반겨주지도,인정해 주지도 않았다.참 슬픈 일을 두더지는 분수 밖의 일을 탐내느라 겪어야 했다.

올해는 60갑자 가운데 37번째에 해당하는 경자년이다.60갑자는 60년마다 순환한다.그러니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하지만 그 순환은 변화를 동반한다.때문에 매년 다른 의미를 띠고 다가온다.사람들이 해마다 육갑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같은 해에 사주팔자에 따라 사람마다 운수가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도 60갑자의 묘미다.같은 띠 다른 운수는 그렇게 정해진다.세상의 모든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상에 고정된 사물과 인식은 없다.60갑자의 의미가 매년 바뀌고 사람마다 타고난 운수가 있어 그 운수가 또 바뀌고 있다.그 변화는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내가 갈고 닦아온 사실에 따라 주어질 뿐이다.그러나 나의 그런 변화를 발견하지 못하면 소용없다.경자년에는 두더지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로 발견했듯이,행여 나에게 나를 자랑할 또 다른 내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그리고 그렇게 또 다른 나를 칭찬해 보자.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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