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위기 극복한 다양한 경험
정치에 녹여내고파 정계 진출
미래-기성세대 중간역할 자신
불확실성 뛰어 넘은 도전정신
극변하는 현 시대 자극 됐으면

자유한국당은 영월 출신의 극지탐험가 남영호 대장을 영입했다.한국당 인재영입 3호다.남 대장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극지탐험을 통해 겪은 경험들이 청년들에게 보다 생생하고 피부에 와닿는 실질적인 조언으로 작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대담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자유한국당 인재영입 3호로 당에 입당한 남영호 탐험가는 최근 본사 서울본부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 자유한국당 인재영입 3호로 당에 입당한 남영호 탐험가는 최근 본사 서울본부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인재영입은 어떻게 이뤄졌나.

“한국당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염동열(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의원에게 두 차례 정도 연락이 왔다.염 위원장은 그동안 젊은 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도전·진취적인 사람을 영입하면 더욱 좋겠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각오가 있었을 것 같다.

“탐험가 생활을 하면서 내가 경함한 것들이 그저 나의 한 시절에 좋았던 경험이나 추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이런 경험들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여러가지 방식이 있었겠지만 이번 인재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래 정치라는 것이 반드시 정치학을 전공해야하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제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굉장히 필요한 시대이자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탐험을 했던 내 경험이 정계에서 충분히 녹여질 수 있고,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서 내 역할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제도권 안에 들어가면 그런 일들을 같이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은 만큼 내가 꿈 꿔왔던 사회 기여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란 점이 마음을 끌었다.”

-‘극지탐험가’라는 이미지가 정계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바뀌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한다.익숙한 것이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국민들은 대부분이 지쳐있고 지치다 못해 화가 나있다.그렇다면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우리 스스로도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가치에 대한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나의 세가지 기본 정신인 ‘청년 정신,도전 정신,탐험가 정신’을 더욱 강화해서 국민과 청년,다음 세대를 위한 일들을 할 것이다.현재·미래 세대와 지금 기성세대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청년들의 ‘형’으로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여러 신년사들을 보면 ‘탐험가 같은 도전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구절이 많다.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불확실성에 대한 준비와 노련함도 매우 중요하다.그런 점에서 기성세대와도 잘 융합해 정치권에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지난 2006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으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제 인생에 가장 큰 하이라이트 중에 한순간이었던 것 같다.막연하게 탐험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유독 많았다.세계지도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아이가 대학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게 됐고, 졸업하고 막역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산악 전문지에 들어가게 됐다.그리고 나서 몇 년을 준비하고 만 서른 살이 됐을 때 중국 텐진으로 떠났다.중국으로 가는 배에서 비장한 각오로 머리를 밀었다.‘내 인생에 탐험가로 드디어 첫발을 내딛는구나’라는 순수한 마음과 함께 설랬다.그러나 생각 만큼 순탄치는 않았다.탐험가로 산다는 것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굉장히 외로운 직업이다.그 과정은 말도 못할 정도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어야 한다.”

-탐험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마지막 원정이 2016년 11월에서 12월부터 진행한 남미의 파타고니아 원정이었다. 파타고니아 최북단에서부터 최남단까지 무동력으로 종단하는 것이었다. 산에서는 협곡을 따라 물이 내려오고, 밑에는 사막이 펼쳐지기도 했다가 빙하,호수가 보이는 등 다양한 지형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남부로 내려올 수록 바람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세게 불었다.텐트,자전거 다 날아갈 정도였다.그러던 중 ‘라 레오나’라는 호수를 만났다.말이 호수지 바다였다.동서 50㎞이상,남북 100㎞이상되는 크기였다.종단을 위해 카약을 타고 진입했다.한,두시간쯤 갑자기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쳤다.카약이 뒤집어지면서 몸이 빠졌다. 드라이슈트에 바람이 빠지면서 빙하수가 온몸에 들어갔다. 아이스팩을 착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가 큰애를 낳고 둘째 애 백일을 못보고 갔을 때다.대원도 나를 구하려 오다가 파도에 뒤집혔다.탔다가 빠졌다가를 수십번 반복했었다.가족 생각이 들면서 울컥하는 마음에 울음이 터졌다.그러다 두 시간 가량 바람에 밀려 뭍에 도달하게 됐다.구조대를 통해 실려갔는데 그때부터 의식을 잃었다.깨어보니 온몸에 핫팩이 붙어있었다.의사가 기적이라고 말했다.나를 살게 해준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삶에 대한 간절함이었다.또한 평소에 없다고 생각했던 잉여의 에너지가 나머지 80%의 에너지보다 더 큰 폭발력으로 날 지탱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힘든 상황에 놓인 청년들에게 특별한 메시지가 될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나의 인생을 견주어 볼수 있고 영감을 받거나 깨달을 수 있다. 청년들이 꿈꾸는 길에 대해서 선배들이 응원과 격려,관심을 갖고 진심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급변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모험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한 경험들이 청년들에게 보다 더 큰 자극과 긍정의 에너지로 전달되길 바란다.”

-어떤 정치인이 되길 바라나.

“탐험가라는 타이틀로 프레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다.정치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다. 탐험가로 이름을 팔거면 계속 탐험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탐험가의 정신을 지니고 있되,그 정신을 통해 정말 다른 정치인이구나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정리/이세훈


▲ 세계 최초로 평화의 지명을 얻은 평창 평화봉이 흰 눈에 덮혀 있다.멀리 보이는 건물이 발왕산 케이블카 종점 드래곤 캐슬.
■ 남영호 △43세 △강원 영월 △오금고 △중앙대 사진학과 △산악전문 사진기자 △극지탐험가 △2012년 그레이트빅토리아사막 1400km 무동력횡단 (아시아최초) △2013년 아라비아사막 엠티쿼터 1000km 도보횡단(세계최초)△2016년 파타고니아 3500km 무동력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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