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버린 강, 빙상경기장으로 때로는 지름길로

 

▲ 박미현 강원도민일보 기획위원
▲ 박미현 강원도민일보 기획위원

신문기사는 당대 사회상을 편집해 비춰준다.
1883년 ‘한성순보’를 시작으로
1896년 최초의 민간지 ‘독립신문’,
일제강점기 내내 발행된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
광복을 맞아 터진 봇물처럼 발행된
해방공간의 신문에 이르기까지
강원지역 기사가 풍부하게 실렸다.
그 어느 때보다 변주가 심한 세월을 살아낸
강원인의 삶과 그 시대를
신문기사에서 찾아냈다.


 

▲ 춘천빙상경기대회 성적을 보도한 1929년 2월 2일자 3면 매일신보.
▲ 춘천빙상경기대회 성적을 보도한 1929년 2월 2일자 3면 매일신보.

서울 태릉선수촌에 1971년 실내빙상장이 건립되고 상업적인 스케이트장과 스키장이 전국 곳곳에 자리 잡기 전까지 자연 빙설이 좋은 강원도는 전국에서 유일한 겨울스포츠 훈련지이자 대회 개최지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춘천 소양강변의 공지천은 전국적인 빙상경기대회장으로 유명했다.일제강점기 강원지역 빙상경기를 다룬 첫 기사는 1929년이다.철원은 산명호(당시 마산제),춘천은 소양강변 공지천에서 열렸다.

가장 먼저 보도된 것은 철원에서 열린 빙상경기대회로 1929년 1월 9일자 5면 동아일보에 실렸다.철원체육협회 주최 제1회 빙상경기대회는 1929년 1월 6일 정오 철원읍에서 10리 가령 떨어진 마산제라는 광활한 빙상에서 혹한이지만 날씨가 무척 좋은 가운데 참가선수와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치러졌다.참가선수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500m,1000m,1만m 경기에 나선 결과 이만수군이 1등을 차지했다고 알리고 있다.철원지역에서 처음 열린 빙상경기대회는 1930∼1933년 열리지 않다가 1934년 2월 18일 마산제에서 제2회 대회가 열렸다.일반부 외에 15세 이하 소아부,35세 이상 노산부,여자부에 각 500m 종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 홍천 최초의 빙상경기대회는 홍일소년운동구락부에서 주최했다. 조선중앙일보 1933년 12월 31일자 4면에 대회를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 홍천 최초의 빙상경기대회는 홍일소년운동구락부에서 주최했다. 조선중앙일보 1933년 12월 31일자 4면에 대회를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강원도체육회 주최로 1929년 1월 27일 공지천에서 열린 춘천빙상경기대회는 춘천지역 각 신문사 지국 후원 아래 500,1000,1500,3000,5000,1만m와 릴레이,장애물 경주,활강 등 종목에 초등,중등 등 학생부와 일반부로 나눠 개최됐다.매일신보 2월 2일자 3면 ‘춘천빙상경기대회’제하 기사는 사진도 실렸다.오른쪽부터 조린구,김경봉,정봉교,최승학,이병숙 등 1만m에서 입상한 일반부와 학생부 수상자들이 관람객들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의 기념사진을 실어 대성황리에 개최됐다고 전하고 있다.

춘천과 철원에서의 빙상경기대회가 관주도 체육회에서 개최한 것이라면 홍천에서 1934년 1월 5일 최초로 열린 ‘전홍천빙상경기대회’는 홍천지역의 유일한 소년운동단체인 홍일소년운동구락부에서 마련했다. 화양강을 끼고있는 대흥관 앞 링에서 개최됐는데 대회 참가 신청금은 30전이며, 종목은 500,1500,5000,1만m와 2000m 릴레이경기였다.이 대회를 후원한 조선중앙일보는 1933년 12월 30일자와 12월 31일자에 대회 광고와 신문기사를 싣고 1월 3일까지 신청할 것을 알리고 있다.

도로와 다리 등 교통 편의와 수단이 열악했던 시절에는 겨울철에 빙판을 건너 집으을 나와 볼 일 보러 읍내로 나오다가 혹은 귀가하다가 얼음이 꺼져 인명 피해를 당한 기사가 종종 나온다. ‘도빙(渡氷)’은 얼음 위로 건너다가 당한 사고기사에 등장하는 용어인데, 매일신보 1930년 2월 9일자 4면에 정선군 애산리의 20대 청년 엄덕순이 읍내에서 일을 보고 새벽 5시에 조양강 얼음 위를 건너다가 변을 당했다.
 

 

▲ 정선 조양강 얼음이 꺼져 사망사고가 발생한 1930년 2월 9일자 4면 매일신보 기사.

자동차가 드물어 요즘과 같이 교통사고가 잦지는 않았으나 버스와 관련된 사고가 뉴스로 간간이 등장된다. 1933년 1월 30일 평창 대화면 운교리 여호고개 빙판길에서 발생된 승합자동차 전복사고는 영월군수가 중상을 입어 비중있게 보도됐다. 영월군 관동운수 소속 승합자동차가 안흥리를 향하며 속도를 놓던 중 얼음으로 변한 길에서 전복돼 영월군수, 영월군청 서무주임 등 공무원 3인 등 26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뉴스다.

한겨울에는 화재가 일어나도 물이 얼어붙어 불을 끌 수 없었다. 1928년 1월 11일 밤 원주 상동리 성윤한 집에서 남폿불이 옷으로 옮겨 붙는 바람에 발화돼 이웃집으로 불이 번지자 그 옆 집을 헐어내고,마침 비가 와서 새벽 4시에 진화됐다.

(중외일보 1928년 1월 15일자 2면) 박미현 강원도민일보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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