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연수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지역회장·소설가
▲ 오연수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지역회장·소설가

들판이 아침 저녁으로 달라진다. 수북했던 덤불이 사라지고 풀벌레 소리도 벌써 끊겼다. 가늘어진 개천의 시냇물은 더욱 투명해지고 논마다 빈 바람만 지난지 오래다. 빈 들을 보고 누구는 ‘공허하고 허무하다’할 것이고 누구는 ‘다 그런 거지 뭐’라며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자연,색을 벗으니 더욱 자연스럽다”라고 노래한 지인의 말대로 이 즈음의 자연은 껍질과 군더더기를 빼어내고 속살과 뿌리를 내어준다. 자연만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간다. 장삼이사의 무명인도 가고 역사적인 인물도 간다. 비록 드라마에서지만 명나라를 건국하고 막강한 권력으로 산천초목을 떨게 한 ‘주원장’도 “춥다.빛을 더 가까이…”라고 말하며 숨을 거둔다.

굴지의 기업 삼성을 세운 이병철 씨는 입원해서 양치질 하던 중 거울을 보다가 “내가 이 칫솔 한 개도 못 가지고 가는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신성일 같은 유명한 스타도 왔다가 갔다.그는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무려 507편이나 되는 영화의 주연을 맡았고, 국회의원까지 했으나 딸에게는 “나 재산 없다”는 말을 남겼다니 마지막까지 스타다.

동료이자 부인이고 그 또한 스타인 엄앵란과의 사이에서 ‘졸혼’이라는 낯선 단어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결혼을 졸업하다니?’ 참 낯설지만 나이 들어 변하는 사랑에 따른 결합의 한 형태이기도 하여 수긍이 가기도 한다. 사람뿐 아니라 하늘의 진짜 별도 변하고 변하다가 블랙홀로 사라지고 화이트홀로 태어난다.

겨울은 힘에 겨워 쉰다고 ‘겨울’이다. 봄은 새로 태어나는 모든 생명력을 분주하게 보아야 한다고 ‘봄’이다. 모두가 가고 오는 중이다. 분명히 봄은 또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는 봄 같지 않을 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수인번호 264번,이육사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자연의 순환을 한탄했고, 두보는 “나라는 사라졌어도 강산은 여전하고 성안에 봄이오니 초목이 무성하다”고 봄을 맞아 오히려 신음했다. 인간의 감정이 수없이 변하고 거기로부터 사랑도,예술도,문화도 태어나련만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질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 내가 당장 죽는다 해도 변함없이 시냇물은 흐르고 새는 지저귈 것이다. 자연의 순리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움직이고 변해 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자연의 순리에 무엇을 할 것인가. 얼마나 진정으로 넉넉한 마음을 쌓아갈 것인가”. 이는 자연의 마음과 내가 하나되는 것일 뿐이다.그것이 인간의 지혜요 마음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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