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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비밀의 방] 1. 은둔의 집,‘이은당 (怡隱堂)’

집 그리는 아내, 사람 그리는 남편이 머무는 곳
주변으로 오죽들이 둘러친 건물
아침부터 점심까지 그림 작업
유리문으로 스며드는 은둔의 빛
빛의 족자가 걸린 단순한 모양새
그림 찾아 이야기 찾아 오는 명소

김여진 beatle@kado.net 2020년 02월 15일 토요일 8 면

최돈선 시인은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오랜기간 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눠왔다.그가 동료들의 내밀한 작업공간을 더 깊이 들여다 보기로 한 것은 춘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나서부터다.예술이 눈을 뜨고 세상을 만나는 창조의 순간,예술인 삶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그래서 지난 해부터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운동화 차림으로 이들의 작업실을 찾고 있다.예술인들의 작업실과 생활을 짐짓 모른 척 구석구석 살피고 나면 예술 탄생의 비밀이 조금씩 풀릴 것으로 믿는다.본지는 격주로 최 시인의 탐방기를 싣고,늘 궁금했던 예술가들의 처소를 함께 들여다 본다.

▲ 신대엽-서숙희 부부화가의 이은당 모습.
▲ 신대엽-서숙희 부부화가의 이은당 모습.
서숙희·신대엽 부부 화가의 집엔 은행나무가 자란다.은행나무 밑엔 여름 한철 파초가 무성히 자라고, 뒤란엔 호두나무가 자란다.그러나 지금은 자라기를 멈춘 휴식의 겨울이다.시간이 멈춘 듯한 집은 고적하기 짝이 없다.낯선 이가 마당에 들어서자 안채 마당에서 요란스레 개가 짖는다.그러나 주인이 있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대문은 굳게 잠겨 있고, 대문 앞 텃밭엔 마른 옥수수 대궁이 허공을 향해 차렷 자세로 얼어붙어 있다.

겨울철 오죽(烏竹)이 푸르게 벽을 둘러친 뒤란 쪽으로 돌아가니, 사람 하나 겨우 드나들 정도의 틈이 보인다.작업실로 진입하는 비밀통로이다.푸른 문을 통과하자 커다란 건물이 떡 버티고 서 있다.서숙희 화가가 그려내는 아주 단순한 구조의 집이다. 이름 하여 이은당(怡隱堂).

작업 중이던 부부 화가는 차와 호두를 내놓는다. 차를 마시며 둘러보니, 직사각형의 건물 내부구조는 아주 단조롭다. 남향은 서숙희 화가, 북향은 신대엽 화가의 방이다. 신대엽 화가의 방을 통과하여야 서숙희 화가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남쪽 긴 직사각형의 유리문으로 은은히 빛이 스며든다.은둔의 빛이다.마치 빛의 족자가 걸린 모양새인데,거기에 청정한 오죽이 흔들리며 들어찼다.적송으로 된 실내 벽면엔 서숙희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거나 벽에 기대어 있다.몬드리안의 그림보다 더 깊은 색감이 전체 화면을 점령한다.어느 화면엔 빨강·초록·검정 물감들이 경계선을 넘어 서로에게 슬며시 스며들고 있다.

서숙희 화가는 집을 그린다.아니 그의 그림엔 집이 전부이다. 그니는 노트에다 이렇게 적었다.‘집에 들어앉아 온 생애를 보냈다.남은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내 그림의 주제는 집이라는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 이은당에서 작업하는 서숙희 화가.
▲ 이은당에서 작업하는 서숙희 화가.
서숙희 화가의 기저엔 집이 은둔자처럼 중심을 이루고 있다.그니의 그림엔 몽환,아늑,아득,그리움이 희미하게 번진다.단언컨대 그니의 그림엔 시의 뿌리가 숨 쉬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에 반해 신대엽 화가는 사람을 그린다.사실적인 화법의 정밀한 선은 평면적이지만 감성적이다. 보통사람들의 따뜻하고 평안한 모습이 그대로 가감 없이 비쳐진다.그것은 여유로움이고 삶에 대한 지극한 이해이다.그가 그린 그림의 소재는 모두 춘천이고 춘천사람들이다.이것은 서숙희 화가도 다르지 않다.

▲ 이은당에서 작업하는 신대엽 화가.
▲ 이은당에서 작업하는 신대엽 화가.
신대엽 화가의 대표적인 그림 봉의산도(鳳儀山圖)는 춘천의 일상적인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특히 2019년에 그린 ‘아이들 놀이’는 이재수 춘천시장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았다.아이들이 노는 골목풍경을 세필로 그려낸 대작이다.2.7mX5.4m 크기의 이 그림은 춘천의 풍속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아이들 한 동작 한 동작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전체적인 화면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아련히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작년엔 약사동 마을사람들의 초상전(肖像展)도 열었다.살아온 날들의 기억이 배경으로 깔린 그림이다.물론 서숙희 화가도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골목 빈집의 적요함을 그려냈다.

살고 있는 집 뒤란에다 이은당을 건축한지 햇수로 4년이 되었다.이곳에서 두 화가부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린다.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점심은 거른다고 했다.엎드려 스케치를 하고 선을 긋고 색을 입히는 작업이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된다.오로지 그림만 그리는 전업화가에겐 전시가 생명이어서 해마다 이은당으로 그림애호가들을 초대한다.이은당은 작업실이자 갤러리 역할도 한다. 화가부부는 오신 분들에게 작업환경을 보여주고 작업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지게 들려준다.

이젠 입소문이 나서,전시기간 동안엔 서면 방동리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알음알음으로 이은당은 어느덧 예술의 명소가 되었다.나는 춘천에서 이은당이 제일 아름다운 집이라고 생각한다.그 이유는, 화가부부의 따뜻한 눈과 한없는 열정이 그 집에 고스란히 담겨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최돈선은= 서정시인.홍천 출신.1970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됐다.강원고 교사로 문예반을 이끌며 여러 문인들을 키워냈다.‘칠 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사람이 애인이다’ 등의 시집 다수와 에세이 ‘느리게 오는 편지’,창작희곡 ‘파리블루스’ 등을 냈다.춘천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일하며 여전히 사랑과 그리움에 대해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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