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호

1

마지막 국모의 원혼이 하늘에 올라 별이 되던 그 해 당신은 태어났지요¹.열다섯 살 소녀는 기독정신基督精神 배우려 고향을 떠났다 한명의 이름 없는 의병²이 되어 독립선언서 한 장 버선목에 감추고 고향으로 스며들었지요.



개성에서 원산으로 가슴 졸이며 원산항에서 대포항으로 쪽배에 실려온 가녀린 불쏘시개.그 종이 한 장 불씨로 타올라 기미년 사월의 양양 만세운동은 아우내장터 못지않았지요. 오일장 두 번 지나도록 푸르른 선혈 낭자했지요.



조여드는 체포망 벗어나려 타관 땅을 떠돌았지요.공주 교편 시절, 부모 잃은 류관순의 세 형제를 운명처럼 도왔지요.처녀의 몸으로 그 오라비의 옥바라지를 했지요.목숨 건 그 사내의 청혼에 못 이겨 네 살 아래 항일반공 무정부주의자 류우석의 아내가 되기로 마음먹었지요.



당신은 한 번 더 고향을 찾았지요.까막눈 후배들이 눈에 밟혀 학교를 세웠지요.십삼 년 간 호랑이 선생님으로 일천이백여 개의 눈망울을 밝히자 일제는 강압으로 민족혼 배움터를 막아버렸지요³.



해방 이듬해 당신은 떠났지요.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지요 당신이 숨겼던 당신 이름, 첫째 며느리가 이 세상 속으로 불러내기 전까지는⁴.



2

두 번이나 연어가 되어 다녀간 당신, 남대천이 미안합니다. 알을 슬어놓았던 물속무덤 하나 기념하지 못했습니다.삼일절행사 때나 고작 스치듯 호명되는 당신이름, 오늘 생각해보니 남대천이 참 부끄럽습니다.연하의 남편도 세 아들도 앞세운 무남독녀 양양의 딸, 당신을 생각하면…

1.명성황후가 시해되던 1895년, 양양군에서 출생. 1975년 서거.2 .원산 소재 한 성경학교로 유학, 루씨 여학교 초등과정 거쳐 개성의 호수돈여학교에서 수학.개성 삼일만세운동 시 호수돈여고 비밀결사대원으로 활동. 3.1932년 양양에 정명학원 설립. 1944년 폐교 전까지 6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함.4.1990년 장남의 아내 김정애의 노력으로 조화벽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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