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묵은 음악으로 채색된 하나의 세계다
재즈평론가로 데뷔, 음악적 여정 시작
여덟권 인문학 서적 출간한 저술가
성음클래식 기획·해설로 애호가 호평
전통음악서 전위예술까지 무대 연출
최근 트로트 심취, 세계화 격상 꿈꿔

그는 이름만으로도 묵직하다.그에게서 풍기는 아우라는 용암처럼 분출하는 에너지와 카리스마다.나는 색소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효자동 언덕배기 김진묵의 작업실을 찾았다.이 15평의 좁은 공간이 그에겐 가장 자유로운 울림의 세계이다.바깥을 환히 내다볼 수 있는 넓은 유리벽 전면을 포스터가 묵직이 가리고 있었다.작년,일송 아트홀에서 공연한 ‘꽃 그리고 새’의 장막포스터다.김진묵은 우리의 민중사를 노래한 뮤지컬극 ‘꽃 그리고 새’를 책으로 곧 출간할 예정으로 있다.

 

▲ 김진묵 음악평론가가 집필한 저서 중 일부
▲ 김진묵 음악평론가가 집필한 저서 중 일부

사방 벽엔 재즈피아노 건반과 아프리카 북과 기타 그리고 서너 개의 둥근 의자들이 놓여 있다.그는 이곳에서 밤늦게까지 색소폰을 분다.그는 플루트,베이스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그런 김진묵이 색소폰을 시작한지 9년째가 되었다.하루 대여섯 시간을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분다.꿈 속에서도 색소폰을 불어요,그는 커피를 타주면서 웃는다.문득 나는 언덕배기에서 호드기를 불던 그의 어린 소년시절을 떠올린다.어쩌면 그건 나일 수도,아니 모든 이의 어린 시절일 수도 있다.그는 68세의 적지 않은 나이다.그럼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늘 정열적이다.

그는 여덟 권의 인문학 관련 서적을 낸 저술가이다.원래 그는 재즈평론가로 시작했다.그는 재즈를 사랑했다.아니 미쳤다고 해야 옳다.미국 흑인들의 고난의 역사 ‘흑인 잔혹사’는 그의 역작으로 널리 회자된다.그 미국의 흑인노예들이 바로 재즈 블루스를 낳았다.또한 재즈에세이 ‘이상한 과일’은 제41회 한국백상문화출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진묵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음악인이다.1980년 재즈평론으로 데뷔한 그 해,성음 클래식 기획담당을 맡았다.그리고 500여 타이틀에 달하는 클래식 음반 해설을 진행했고,세종문화회관에서 150회의 클래식 레코드 감상회를 열어 클래식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월간 ‘객석’ 차장과 공연기획 실장을 거쳐 1990년부터 지금까지 프리랜서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 춘천 효자동에 위치한 ‘김진묵의 음악작업실’
▲ 춘천 효자동에 위치한 ‘김진묵의 음악작업실’

김진묵은 춘천 대중음악의 대부라 할 수 있다.아니 춘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손꼽는 전방위 뮤지션이다.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들며 활동하던 그가,2000년대 들어 우리의 소리 트로트에 심취하기 시작했다.그에게 깊은 내면의 울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그 내면의 울림은 시원을 흔드는 혼의 소리요,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민초들의 소리였다.

그 강물 같은 울림은 이념을 훌쩍 뛰어넘는 그 무엇이었다.북의 사람이든 남의 사람이든 다 같이 간직하고 있는 공통의 울림.그래서 이 울림의 소리를 들고,북한의 이곳저곳을 메아리처럼 누비며,소리하고 껴안고 울고 웃고 싶은 것이 김진묵의 소망이다.분단의 오랜 아픔을 치유할 노래는 민중의 소리 트로트밖엔 없기 때문이다.부르면서 울고,울면서 서로를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 김진묵의 생각이다.

 

▲ ‘김진묵의 음악작업실’ 내부 전경
▲ ‘김진묵의 음악작업실’ 내부 전경

1960년 후반 박정희 정권 때,트로트는 왜색이요 퇴폐적 노래라 하여 일부 인기가요가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을 비롯한 많은 곡들이 된서리를 맞았다.당연히 민중의 애환과 한숨을 노래한 이 노래는 청산의 대상이 되었고,‘트로트=뽕짝’이라는 등식으로 비하되었다.그러던 것이 1970년부터 트로트는 새로운 편곡의 형태로 리메이크되기 시작했다.송창식의 ‘왜 불러’,박은옥의 ‘양단 몇 마름’,정태춘의 ‘나 살던 고향’,한대수의 ‘목포의 눈물’ 등 많은 곡들이 리메이크되어 불려졌다.1976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트로트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트로트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우리의 뿌리였다.그것은 질경이의 끈질김처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우리의 정서이다.

전통음악에서 전위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대를 연출하고 있는 김진묵은 시간을 쪼개서 생활한다.그에겐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늘 바삐 뛰어다녀야 한다.

 

▲ ‘김진묵의 음악작업실’ 한 켠이 연주공간으로 꾸며졌다.
▲ ‘김진묵의 음악작업실’ 한 켠이 연주공간으로 꾸며졌다.

1990년 이후 김진묵은 해외 뮤지션들과 교류가 잦다.30년 동안 지속된 만남은 음악의 폭과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는 2005년 세계 평화를 위한 월드뮤직 ‘조화로운 지구(Earth Concerto)’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조화로운 지구’는 한국,인도,이란,이라크,모로코 음악인들로 구성된 그룹이다.그는 명상음악,재즈,클래식,트로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음악에 관련된 인문학 강의,방송활동,각종 연주회에 눈코 뜰 새가 없다.앞으로 다섯 권의 책을 낼 계획이다.그의 끊임없는 사색은 그가 추구하는 음악세계의 원천이 되고 있다.

김진묵이 내걸고 있는 주요 테제는 ‘21세기의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다.우리의 언어로 된 우리의 노래,즉 트로트 가요를 세계화로 격상시키는 일.김진묵은 그 일을 하고 싶다.김진묵은 오늘도 색소폰을 분다.노을이 깔리듯 효자동 언덕은 색소폰 소리로 날이 저문다.김진묵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