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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주의 폐교 이야기] 3. 태백 화전초교

탄광과 학교, 운명을 같이하다

데스크 2020년 03월 14일 토요일 7 면
▲ 펜션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 화전초교 현재 모습.
▲ 펜션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 화전초교 현재 모습.

조용하던 태백 산속 마을

광업소 덕에 붐비기 시작

1963년 3월 학교 탄생

운동회 날 온 동네 시끌벅적

길까지 솥을 걸고 국밥 끓여

화전리 전체의 축제 승화

석탄 감산에 하나 둘 떠나

2015년 3월 결국 폐교

건물, 펜션·식당으로 변경


■광산촌 어른·아이 할 것없이 모두의 문화시설이던 곳

 태권도선생님과
태권도선생님과
기차는 힘겹게 똬리를 틀며 해발 885m의 태백시 추전역에 닿았다.기차가 오를 수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였다.보따리를 들고 막장을 찾은 사람들이 어리둥절 기차역에서 내렸다.부산에서 온 젊은 부부는 옷깃부터 여몄다.스산한 바람이 몸으로 번졌기 때문이다.박 씨 할머니의 부부가 태백을 찾은 첫날이었다.


젖먹이 아이를 업고 보따리를 든 부부는 태백시 화전리에서 삶의 둥지를 틀었다.남편은 추전역에서 가까운 제일광업소에 취직을 했다.광업소에는 참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고,주변에는 집들이 들어섰다.조용하던 산속마을은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아이들은 많은데 가르칠 초등학교가 필요했다.그때 22살 동갑내기 부부는 참 열심히 일했다.남편은 광산으로 아내는 광업소 사람들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용품도 팔고 음식도 팔았다.

동네꽃밭에서
동네꽃밭에서
화전초등학교가 지어진 시기였다.1963년 3월 5일 주민들의 요청으로 10개 학급 설립인가를 받아 화전국민학교가 탄생했다.학교 건물이 들어선 곳은 깡패수용소로 쓰였던 자리였다.광복이 되고 깡패가 많았던 시절 정부에서는 그들을 모아 교화를 했다.매봉산이 앞을 막아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기로 유명한 장소였다.절망의 깡패수용소가 학교가 되어 희망을 키우는 장소로 변한 것이다.

화전초등학교는 화전리의 유일한 교육시설이며 문화시설이었다.부부의 3남매와 화전리 아이들 모두 이 학교에 다니고 졸업을 했다.막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탄을 캐며 미래를 키우는 일이었다.큰 아들이 환갑을 넘겼으니,이 학교가 지어진지도 벌써 오십 몇 년이 훨씬 지났다.딸이 좋아했던 이은수 선생님과 찍었던 사진을 보면 참 감회가 새롭다.

▲ 보이스카웃 활동 모습
▲ 보이스카웃 활동 모습
▲ 제10회 졸업기념
▲ 제10회 졸업기념

한때 화전초교는 학생 수가 많아서 분교까지 두었다.학생 수가 많을 때는 천여 명이 넘었다고 하니 그 당시 광산의 활황을 알만하다.한 학년이 3반까지 있었다.오죽 거리가 붐볐으면 화전리를 ‘청량리 역 앞’이라고 별명을 붙였단다.동네 인구수와 학생 수는 비례하니 당연한 것이다.


운동회는 어린이운동회가 아니라,어른운동회라고 했다.길 건너까지 솥을 걸어놓고 국밥을 끓였다.온갖 장사꾼이 몰려들었다.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고,어른들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날이었다.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그야말로 화전리에서는 공연으로 또 다른 추억을 쌓았다.어른들이 더 즐겨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아이들이 막장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그렇게 화전초교 운동회는 화전리의 축제였다.

소풍에서
소풍에서
소풍은 용수골과 소도당골로 갔다.용수골은 넓은 공터가 깨끗했고,소도당골은 태백산이 자리한 곳이었기 때문이다.소풍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했다.김밥이며 과자,평상시에 자주 못 먹는 음식을 싸들고 경치 좋은 곳에서 아이들과 하루 노는 것이니 좋지 않을 수 없었다.소풍장소는 깨끗해서 검은 탄과 술판,그리고 싸움으로 메워졌던 마을거리하고는 너무나 달랐다.용수골은 마을사람들이 화전(花煎)놀이도 하는 곳이다.

▲ 소풍에서
▲ 소풍에서
학교가 있을 때는 동문회도 잘 열렸다.화전초교 동문회는 졸업생과 그 부모들이 함께 했다.음식
을 만들고,놀이도 함께 했다.저녁이 되면 모닥불도 피우고 불꽃놀이도 했다.운동회 못지않은 또 다른 축제였다.참 많은 졸업생과 학부모들이 함께 했고,선생님들도 같이 모여 즐거운 하루가 됐다.화전리 마을의 축제였다고나 할까.그렇게 사람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어울렸다.

화전초교의 운명은 석탄의 운명과 같이 했다.검은 보석이라 불렸던 석탄은 이제 보석의 빛을 잃었다.더 이상 탄을 캐지 않아도 대체에너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화전리의 유일한 생산 자원이었던 제일광업소가 감산에 들어갔고 드디어 문을 닫았다.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화전리를 떠나갔다.더 이상 화전초교에 입학할 아이들이 없었다.52회 3193명의 졸업생을 내고 2015년 3월 1일 화전초등학교는 추억과 역사만 남긴 채 폐교되고 말았다.

화전리거리에서
화전리거리에서

학교가 폐교되던 해 박씨 할머니의 남편은 진폐증으로 병원에서 고생하다가 그동안 막장에서 벌었던 돈을 다 쓰고 세상을 떠났다.박씨 할머니는 꽃을 참 좋아했다.학교 정문부터 집 앞까지 온갖 꽃을 심어 가꿨다.남편은 아내와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어줬다.남편의 죽음에 꽃 한 다발을 바쳤다.평생을 고생하며 함께 살아온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검은 탄에서 피어나던 꽃을 바친 것이다.남편은 검은 보석을 캐려고 들어왔을 때부터 화전초교의 역사와 함께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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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정에서 친구와 촬영한 모습                            ▲ 교정에서 선생님과 촬영한 모습

이제 80을 넘긴 박 씨 할머니는 인터뷰 중간 화전초교와 남편,아이들을 생각하며 먼 산을 바라봤다.낮에는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팔고,저녁에는 하룻저녁에 막걸리 60통을 팔던 옛 일이 주마등처럼 할머니 머리로 스쳐갔다.참 억척 같이 살았던 지난날들이었다.박씨 할머니는 아직도 아이들이 다녔던 화전초교의 교가를 부르고,딸이 좋아했던 선생님 이름을 잊지 않고,아들이 보이스카웃할 때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 채 80세 할머니로 늙어 있었다.‘청량리 역 앞’이라 했던 화전초교 옆 마을 거리는 스산했다.겨울의 해는 참 빨리도 화전리 뒷산을 넘어 사라졌다.

학생들이 떠나고 선생님이 떠나고 마을 사람들이 떠난 화전초등학교는 지금 펜션으로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다.졸업생과 학부모와 마을 사람들에게 화려했던 추억만을 남긴 채였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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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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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c69 2020-03-14 09:34:53    
잔잔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올수 없는 영광이지만 잊히지 않길 바랍니다.
3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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