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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현의 ‘옛 신문 속 강원도 읽기’] 4. 95년 전 형평가와 인권혁명가 부르다

‘모든 아동이 교육 받을 권리’ 문맹퇴치 위한 참된 희생
1894년 신분제 폐지 불구 백정 멸시 여전
주변 훼방으로 자녀 초등학교 입학 어려워
형평사 원주지사 강습소 개설 어린이 교육
원주·횡성 형평운동 중 일제탄압에 순직도

박미현 webmaster@kado.net 2020년 03월 21일 토요일 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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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월 18일자 시대일보 2면에 근대식 건물 앞에서 어린이와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남성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사진이 등장한다.높다란 깃발을 들고 있는 이 흑백사진은 너무 흐려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으나 기사 제목이 ‘형평지사 창립 1주년 기념’이어서 어떤 행사인지 짐작이 된다.



[‘원주]원주형평지사에서는 지난 12일이 첫돌 잡히는 날이므로 기념선전문을 지난 11일 원주장날에 시내 일청년들과 사원 일동이 원평강습소 생도 일동을 선두로 하여 형평기를 들고 형평가와 인권혁명가를 부르며 선전문 2천여장을 돌리고 이튿날에도 또한 200여명의 군중이 항열하여 선전문을 돌린 후 오후1시에 원주예배당에서 식을 거행하게 되었다.정각 전부터 모여드는 군중은 무려 500,600명에 달하였으므로 정호익씨의 사회 하에서 장지필의 취지 선전이 있었고 내빈 축사가 있은 후 정호익씨의 답사와 축전낭독으로써 폐회하였는데 때는 오후5시 반이더라. 초대한 내빈 70명과 사원 대표 40여명으로써 원평강습소 내에서 친목을 위주하여 연회를 배설하여 장지필씨의 축연과 전면수씨의 답사로 만반 박수로써 자미있게 놀다가 밤11시에 산회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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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사원주지사는 창립 1주년 기념으로 1925년 1월 11,12일 이틀에 걸쳐 시가지를 순회하는 홍보 활동을 펴면서 ‘형평가’와 ‘인권혁명가’를 불렀다.12일 오후1시원주예배당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오륙백여명이 참석해 오후5시 반까지 성황을 이뤘다.축하연설과 단합을 다지는 프로그램은 원평강습소에서 밤11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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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아래에는 ‘형평사지사 제1회 총회’ 제목으로 원주형평지사 활동을 알리는 내용이 한 건 더 실렸다.창립1주년 다음날인 1월 13일 곧바로 총회를 갖고 지사장 김팔용,부지사장 조수진,총무 겸 회계 김상륜,재무 김만산을 새 임원으로 뽑고 사원 책무와 운영비 분담 등 4개항에 대해 논의했다는 내용이다.결의안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올 봄 4월에는 아동을 전부 공립보통학교에 입학을 시킬 일’이다. 사람을 차별해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도록 할 때는 결사적으로 노력할 것도 결의했다.

조선시대 신분사회에서 도살업에 종사한 백정은 천민 중의 천민으로 장례 때 상여도 빌리지 못할 정도로 냉대와 멸시를 받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 폐지로 법적으로 자유의 몸이 됐으나 사회적, 인간적 멸시는 일제강점기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다.일상적 냉대 중에서도 특히 백정의 자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어도 주변의 훼방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하는 차별이 부모에게는 가장 뼈아팠다. 학교에 후원금도 많이 내놓았으나 입학허가를 받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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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형평사 원주지사에서 가장 먼저 한 활동은 강습소를 개설한 것으로 시대일보 1924년 12월 26일 ‘강습생의 강연회’ 기사에 따르면 원평강습소는 형평사 원주지사에서 관할해 40여명의 어린이를 가르치는데 교원 정호익군이 열심히 가르치는 중이라고 한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어린이가 직접 강연하거나 토론회를 열고 있는데 지난 토요일 밤에는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열렬한 말로 ‘우리도 사람이라 배워서 사람이 되자’느니 부르고 나오는 것을 볼 때에 기자도 무한한 감상을 이기지 못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답게 살자’며 인권운동의 기치를 내걸었던 ‘형평사’는 1923년 백정과 함께 진보적인 지식층이 힘을 모아 자발적으로 결성한 민간단체이다.형평사는 저울대 형(衡),고를 평(平),단체 사(社)로 신분은 저울대와 같이 평등해야 한다는 뜻이다.1923년 4월 25일 경남 진주에서 형평사가 발기된 것을 시작으로 1935년까지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전개된 형평운동에 강원지역에서는 17개 지사와 분사가 창립돼 활동했다.

한우축제로 유명한 횡성지역은 원주지사보다 빠른 1924년 1월 4일 길만학씨를 분사장으로 하여 결성됐다.(동아일보 1924년 1월 10일자 보도) 이 무렵을 전후해 춘천지사는 정봉록씨를 지사장으로, 화천분사는 이춘복씨를 분사장으로 해 창립됐다.1925년에는 강릉 삼척 철원 울진, 1926년에는 양양 홍천,1927년에는 원주 문막·부론지역에 원주형평지사와 별도로 문흥형평사가 결성됐으며 영월 평창 정선 등 지역에도 형평사가 설립됐다.1927년 11월 15,16일에는 홍천에서 제1회 강원도형평대회가 열릴 정도로 확대돼 차별반대운동,교육운동,생존권 수호,구호활동을 폈으며 1930년 6월에는 형평사강원연합회가 결성됐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라고 첫 머리에 선언한 형평운동에 투신해 전국을 누비며 활동하다 제 목숨마저 빼앗긴 원주,횡성의 대표적인 인물에 대해 애도하는 신문기사 2건이 있다.동아일보 1928년 3월 28일자 4면에 실린 ‘고 이장명씨 추도’기사이다.‘조선형평운동의 선구자로 강원도 원주 출생인 고 이장명(李長命)씨는 약 3년 전부터 원주,횡성,통천,홍천,춘천 등지를 비롯하여 수십여 처 형평사를 창립하고 따라서 원주에 원평강습소를 설립하여 모든 형평청년으로 더불어 문맹 퇴치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하며,형평운동본부 중앙집행위원과 수원형평사장 기타 요로의 중임을 역임하여 형평운동에 많은 노력을 하여오다가 불행히 3월 19일 오전11시에 불귀의 객이 되었으므로 군산형평사에서는 지난 24일 오후1시부터 군산형평사무소내에서 고 이장명씨의 추도식을 거행하였는데(중략)’로 소개됐다.

1933년 10월 11일 조선중앙일보에는 횡성 출신 이동구(이이소)씨가 1919년 3·1운동에 이어 형평운동,고려혁명당에 투신했다가 중국에서 체포돼 형기를 치르다 피폐해진 몸으로 절명했다고 보도했다. <본지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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