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기억은 역사로 남는다]
1.곧 사라질 춘천의 재개발 지역, 기와집골
과거 정치·경제·문화 중심지
명동 땅값 10배 금싸라기땅
‘준상이네 집’ 영광도 한 때
소양로2가 재건축 구역 전락
“문화 유산 아카이브화 시급”

▲ 재개발을 앞두고 사람들이 떠난 기와집골은 스산하기까지 하다. 고층 건물 옆으로 자리잡은 기와집골이 마치 도시 속 섬과 같아 보인다.     최유진
▲ 재개발을 앞두고 사람들이 떠난 기와집골은 스산하기까지 하다. 고층 건물 옆으로 자리잡은 기와집골이 마치 도시 속 섬과 같아 보인다. 최유진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강원도민일보는 강원도의 과거와 현재를 회고하고 새로운 미래를 가늠하는 ‘사라지는 것들,기억은 역사로 남는다 시리즈’를 연중 연재한다.‘사라지는 것들’ 시리즈는 강원도의 과거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이를 역사로 기억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첫 시리즈로 준상이네 집,기와집골을 찾았다.

 춘천이 사라지고 있다.

춘천을 수십년간 지탱해 온 구도심은 재개발 홍수 속에 시나브로 스러지는 중이다.춘천 기와집골은 사실상 마지막 남은 춘천의 유산이다.그러나 이 일대는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배용준과 최지우가 주연한 드라마 ‘겨울연가’의 준상이네 집은 이제 낡은 간판만 남아있다.한 때 동남아 관광객으로 넘쳐나던 골목은 황량한 바람만이 휘감고 있다.누구도 이곳을 과거 기와집골이라고 하지 않는다.이제 그곳은 소양로2가 주택재건축정비구역일 뿐이다.과거의 영화는 다 역사가 되고 있다.주민들에게 그 공간은 26층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미래와 기대의 공간으로 비뀐 지 오래다.그 기대를 내준 채 골목은 소양강 강바람을 그대로 맞고 있다.

과거소양로 일대의 기와집골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산업화시대 초기까지 명실상부 춘천지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강원도청,춘천시청에 옛 춘천경찰서까지 몰린 행정의 심장이자,서부시장을 중심으로 연탄공장과 극장까지 들어찬 번화가였다.50∼60년대초 이곳 땅 값은 춘천 명동의 10배가 넘었다.

지금 형태의 기와집골이 생긴 것은 한국전쟁 직후,1953년 미군부대 캠프페이지가 들어서면서다.이 동네는 봉의산 바로 옆에 있어 전쟁으로 인한 폭격피해가 적은 편이었다.미군을 상대로 한 주점,바 등을 필두로 한 집 걸러 한 집씩 여관,요릿집,미용실 등이 들어찼다.

▲ 기와집골 소재 한 저택
▲ 기와집골 소재 한 저택

최상위 부유층이 요선동 등으로 떠나는 대신 상인들이 신흥 부유층으로 이 곳을 차지했다.장사를 하거나 기와집 세를 놓고 돈을 벌었다.그야말로 번화가였다.멋쟁이 아가씨들은 다 소양로 바닥에 있다고 했다.단층으로 지어진 기와집마다 미군들과 살림을 차린 여인들도 많았다.미군들을 위한 바,유흥업소들이 춘천고 건너편까지 우후죽순 생겨났다.극장도 2곳이나 있었다.서부시장 옆 ‘신도극장’,현 샛별어린이집 자리의 ‘아세아극장’이다.아세아극장은 간호사 양성소를 거쳐 지금의 어린이집으로 바뀌었다.춘천의 연탄공장 2곳도 모두 이 동네에 자리잡았다.연탄사러 중도나 서면에서 배 타고 온 이들이 육지(?)로 나온 김에 공장 앞마당에 좌판을 벌였다.그래서 생긴 곳이 번개시장이다.

반전의 기회도 있었다.드라마 ‘첫사랑’과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떠오르며 한때 춘천의 대표적 관광상품이 됐던 것.원조 한류스타 배용준이 연기한 ‘준상’이 고교시절을 보내며 ‘유진(최지우 분)’과의 사랑을 키워가던 ‘준상이네집’ 덕이다.겨울연가가 해외에 방영된 2004∼2007년 일본·동남아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하지만 영광도 잠시.드라마 흥행 후 춘천시 임대계약을 통해 개방됐던 이 작은 집은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다가 별다른 대책도 없이 2008년 소양3지구 재건축지구에 포함됐다.이후 발길은 뚝 끊겼고,지금은 빛바랜 안내간판만 쓸쓸히 달려있다.‘겨울연가’를 제작한 윤석호 PD는 지난해 춘천을 방문,“네비게이션에 뜬 ‘준상이네집’을 일부러 찾았는데 폐허처럼 돼 있었다.안타깝지만 시간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한 주민은 “사람들만 몰렸지 실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진 것은 전혀 없었다.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이밀 때마다 허름하고 못 사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 같아 오히려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한때 금싸라기였던 과거의 부촌은 이제 춘천의 마지막 재개발 지구로 불린다.재개발 광풍 속에 대형 아파트단지들이 퇴계동,후평동 곳곳에 들어서는 가운데 사람들이 줄이어 떠났다.이들은 “폐허같은 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한다.재개발 소식에 빠져나간 이들도 있다.등록된 250여가구 중 실제 살고 있는 집은 40여곳 뿐.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위태한 빈 집은 녹슨 철문이 겨우 버티고 있고,그 위로 무단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문만 차갑다.

춘천시는 도시재생을 통한 활성화 의지를 보여왔지만 부정적인 주민들이 많았다.결국 기와집골 일대의 소양로2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은 이르면 올해 말 착공에 들어간다.재건축사업조합이 내달 시행사 변경승인을 신청하면 이뤄진다.지상 26층 아파트 11개동을 짓는 사업.법정 소송까지 거친 끝에 결정됐다.김은석 춘천시의원은 “춘천은 근현대적 건물과 유산을 찾아보기 힘든만큼 마을박물관 형성 등 문화유산화를 위한 아카이브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25일 낮.기와집골 골목에서 유모차를 지팡이 삼아 끌고 나온 노인을 만났다.꽤 여러 질문을 했는데 이런 대답만 돌아왔다.“여기 사람들 다 옛날에 한가닥 했던 사람들이여.” 그의 낡은 휴대용 라디오에서는 가수 유산슬(유재석)이 부른 ‘사랑의 재개발’이 흘러나왔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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