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불심 담긴 그의 작품에선 은은한 차향이 난다
춘천 근화동 작업실 ‘겸로화실’
자연과 교감하는 조각작품 탄생
회화·시집 발간 등 예술영역 다채
행위예술가로서 퍼포먼스 큰 반향

▲ 겸로 이형재의 작업실인 ‘겸로화실’은 춘천 근화동에 있다.겸로는 이곳에 찾아온 손님들을 늘 반갑게 맞이한다.
▲ 겸로 이형재의 작업실인 ‘겸로화실’은 춘천 근화동에 있다.겸로는 이곳에 찾아온 손님들을 늘 반갑게 맞이한다.

이형재는 조각가다.그럼에도 그는 다인(茶人)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그의 차분하고 은은한 성품은 차를 닮았다.오랜 시간 동안 그는 차를 마셔왔다.차는 그의 일상이며 명상이다.그것은 삶의 한 부분으로 그의 몸에 DNA처럼 스며있다.

그래서 그의 호가 겸로(謙爐)요 차화로다.그만큼 호는 이 분에겐 아주 중요하다.그것은 그가 걸어온 길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차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야기들,사색과 명상들.이것들이 이형재의 혼과 육체를 이루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형재의 겸로화실엔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온다.대개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지장이 있다하여 손님을 꺼리지만,그는 언제나 미소를 짓고 손님을 맞이한다.

호수가 환히 내다보이는 화실엔 그가 그린 노란 은행나무 그림이 걸려 있다.춘천 가정리에 있는 500년 묵은 거목이다.그 그림 아래서 보이차를 마시고 설록차를 마신다.모두들 이형재가 따라준 찻물의 찻잔을 따뜻하게 감싸 쥐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을 이야기하든,시절을 이야기하든,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그냥 들으면 다들 미소를 짓게 된다.방문한 이들은,듣는 일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더 깊고 향기롭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깨닫게 된다.
 

▲ ‘겸로화실’에 걸려 있는 이형재의 작품.
▲ ‘겸로화실’에 걸려 있는 이형재의 작품.

이형재는 칠전동 드름산 아래 아파트에서 화가 정지인 님과 함께 산다.그가 사는 곳을 ‘겸로다숙’이라 이름 붙였다.그곳 다실은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그는 부인과 인근 드름산을 자주 오르내린다.노각나무와 물박달나무가 서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낮은 정상이 나오고 멀리 안마산 들판과 대룡산이 보인다.그곳 소나무 숲에서 가지고 간 다구(茶具)를 꺼내어 차를 우려 마신다.때론 막걸리를 마실 때도 있다.지나가는 산행인이 그가 따라주는 차를 얻어 마시거나 막걸리를 들이킬 경우도 있다.그래서 그는 산에서도 반가이 친구를 만난다.모르는 사람도 산에선 모두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드름산의 유래는 고드름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이형재는 듣는다(聞)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고 한다.드름산에 들어오면 온갖 소리가 다 들린다는 것이다.새소리, 바람소리는 물론이고, 바위와 나무들, 나무속 곤충들의 소리도 모두 다 들린다는 것이다.그래서 산과 나무,우화(羽化)한 나비 그리고 달과 강이 모두 그의 친구가 된다.그것들이 그림의 소재가 되고 조각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작년에 약사동에 있던 화실이 근화동으로 옮겨졌다.그동안 작업한 그림이나 조각품들이 화실 공간의 절반을 차지한다.이형재 조각가는 그림이 안 팔려 그냥 작품을 보관만 하고 있다며 웃는다.사실 그의 그림이나 조각품은 제주도미술관,강원대박물관,부천시청 등 우리나라 전역의 중요한 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형재의 조각은 늘 자연과 교감한다.그 자연은 불심이요 영원함이다.잎새에 흐르는 강은 부처이다.부처는 가만히 앉아있지만 흐르는 존재이다.부처와 강,부처와 나무,부처와 아이,부처와 구름은 동일체요 변화하는 존재이다.부동이 아니라 움직이는 존재,그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우리에겐 ‘영원한 흐름’으로 느껴진다.
 

▲ ‘겸로화실’에 걸려 있는 이형재의 작품.
▲ ‘겸로화실’에 걸려 있는 이형재의 작품.

이형재는 1984년 한국미술청년작가상 수상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강원현대작가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현재까지 한일교류전,한중교류전,서울현대미술제,광주현대미술제,익산국제환경조각전에 출품하는 등 304회의 단체전에 참가했다.이형재는 강원미술대전 초대작가로서 제1회 춘천미술상과 2019년 제33회 강원미술상을 수상했다.특히 이형재는 애너하임 초대전과 더불어 미국 캘리포니아 정혜사에 대형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이형재는 조각가이지만 회화·데생전을 열기도 하고,시집을 발간하여 시인으로도 예술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그는 사회참여적인 행위예술가로도 널리 알려져 열다섯 번의 굵직한 퍼포먼스도 가졌다.이형재는 대형붓 하나로 자연의 흐름,자연의 숭고함을 보여준다.자연과 친화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는 이형재가 늘 지니고 있는 중심사상이다.2018년 마임이스트 유진규,화가 임근우·전형근 등과 함께 벌였던 중도야 미안해’ 퍼포먼스는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선사시대의 유적을 함부로 훼손하는 인간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그밖에 의병장 유인석 순국100주년기념공연,한강생명시원제,물을 주제로 한 ‘산태극 수태극’은 보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물이 흘러 강을 이룬다.그 지류 휘돌아 태극이 되니,그것들 한 몸으로 영원의 바다에 이른다.

화가 전형근과 재즈색소폰 연주자 길영우와 함께 한 이 퍼포먼스는 한 편의 시였다.그 붓의 흐름이 어찌나 멀고 깊었던지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그날 나는 석양 저 끝으로 흐르는 강과 산굽이를 따라가면서 애절한 재즈색소폰 소리를 오래오래 들었다.
 

▲ 다인(茶人)으로도 잘 알려진 겸로 이형재가 차를 달이는 모습.
▲ 다인(茶人)으로도 잘 알려진 겸로 이형재가 차를 달이는 모습.

이형재는 오늘도 그린다.아니 그리지 않는다.그냥 걷는다.문득!그는 무엇이 다가왔을 때 조용히 집으로 돌아온다그의 집은 마음의 본향이다.차 한 잔의 그리움이 존재하고,그 존재를 마신다.그리고 그가 걸으면서 담고 온 ‘아무것도 없음’을 조형하거나 무심코 그려낸다.무심의 발로다.

멀리 있던 호수가 밀려들어와 작업실에 펼쳐질 때 이형재는 자신을 잊는다.몸과 영혼을 있는 그대로 맡기면 되는 것이다.그는 의도하지 않으면서 의도한다.그의 불심은 고여 있으면서 일렁여 어디론가 흐른다.

그는 반야경처럼 붓을 어깨에 메고 산천을 주유한다.어느 날 하늘에다 붓을 그어 새로운 하늘이 열리게 하고,어느 날 땅에다 붓을 꾹 꽂아 짙푸른 생장의 푸른 나무가 되게 하고,어느 날 산굽이 계곡에다 붓을 쭉쭉 그어 그것이 긴 강이 되게 하는,그러다 소리 없이 지워지는 그런 그림이 나는 자꾸만 보고 싶다.나는 이형재가 대형 붓을 어깨에 메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천진하다고 생각한다.그 모습 자체가 내겐 살아있는 그림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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