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의 창궐,권력을 향한 탐욕,‘킹덤’과 닮은 4월 현재
화사한 봄거리 한산,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격리된 시간 보내는 방법 강구
묵혀둔 영화·드라마 소비, 작품성 인정받은 영화들 재개봉 소식 반가움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 우리의 ‘지금, 여기’와 묘하게 닮아 논란 속 화제
인간들의 욕망 충돌·파멸까지의 이야기 풍자와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줘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화사한 봄거리는 한산하다.산으로 들로, 바닷가로 나가 봄바람과 봄꽃을 즐겨야 할 시간에 사람들은, 창으로 들어오는 투명한 봄볕을 만진다. 자발적인 격리는 지루함과 불편함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격리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시도하고, 방법을 공유한다. 실시간 뉴스를 통해 현실을 읽기도 하고, 시간이 없다고 묵혀두었던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하고 있다.

덕분에 영화 마니아들이 그토록 줄기차게 요구했던 ‘영화 다양성’도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얼마 전에 살펴보니, 한 극장에서 하루에 상영하는 영화가 열다섯 편 이상, 많게는 스무 편 정도까지 늘었다. 하루에 개봉 영화가 열편 내외였던 걸 생각하며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불거졌던 독과점도 찾아볼 수 없다.

네티즌의 추천을 받은 ‘인생영화’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이 재개봉되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같은 작은 영화들이 한 달 가까이 개봉관을 확보하고 있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가 ‘관객 점유율’이 아니라 다양성, 창의성, 관객과의 소통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반갑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가 있다. 우리나라 작가와 배우들,외국 자본(넷플릭스)으로 만들어진 사극좀비물 ‘킹덤’(시즌1·2)이 그 주인공이다. 배우들의 연기,사극톤을 벗어난 말투 등 초반의 논란을 벗고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데는,드라마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의 현실과 묘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역병의 창궐,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들의 탐욕, 자신의 신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시감마저 느끼게 한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죽은 선왕을 좀비로 만든 조학주의 어두운 비밀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인간의 각기 다른 욕망이 어떻게 부딪히고 파멸하는지를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치명적인 역병이 북상하자, 해원 조씨의 수장 조학주는 한양 도성을 지키기 위해 남쪽 지역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입을 막으며,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조학주는 권력의 본질에 대해 “이 연못 안에 시신이 몇 구가 있건 몇십 구가 있건, 그 아무도 내가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권력”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과 사람을 죽여가며 권력을 탐하는 조학주 사이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다. 오히려 그는 좀비보다 무서운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조학주는 그보다 강한 권력욕을 탐했던 딸에게 목숨을 잃는다.

이 드라마의 깨알같이 촘촘한 풍자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낸다. 좀비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목을 베거나 불에 태우는 것뿐인데, “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훼손효지시야”(몸과 머리카락, 살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를 주장하며 좀비가 된 아들을 보호하다가 모두에게 화를 입히는 양반 부인, 좀비가 된 시신 가운데서도 양반의 시신만큼은 따로 구별하여 장례를 치른 후 처리해야 한다는 양반들의 고담준론, 책을 들어야 할 손에 무기를 들어야하냐며 투덜거리는 양반들의 불만은 헛웃음마저 나게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배경은 이씨 조선이 아니라, 인간들의 크고 작은 욕망이 생겨나고, 부딪히고, 파멸하는 자리다.

수유는 피어난 지 이미 오래고, 벚꽃과 목련은 한창이다. 봄하늘은 파랗고 봄빛 강물은 푸르고 깊다. 봄까지 살아남은 바이러스는 여권도 차표도 필요 없어서, 사람들 사이를 부유하며 떠다닌다. 꽃과 바이러스가 뒤섞인 거리는 파란색, 핑크색, 노란색, 초록색 점퍼와 포스터로 점령되고, 요란한 구호들과 날선 비난, 삿대질은 바이러스보다 무섭고 빠르게 움직인다.

욕망을 숙주로 삼은 바이러스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공천권을 두고 보기에도 민망한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져 이름조차 외울 수 없는 수많은 비례정당들, 위험한 폭로전과 고소, 고발은 몸으로 파고드는 바이러스보다 위태로워 보인다.

드라마 속 조학주와 딸(중전)이 떠오른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였지만, 그들은 독약과 역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들의 욕망은 그들의 연약한 몸과 함께 파멸했다.

드라마 속의 전염병은 지위고하, 빈천, 남녀의 차이를 불문하고 물들인다. 코로나19가 국적, 성별, 인종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것처럼. 오늘의 현실과 드라마는, 사회적 지위, 학력, 성별이 어떻든 사람이란 ‘피와 살을 가진 몸’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평등한 존재일 뿐임을 말해준다.

드라마(시즌 2)의 마지막은 살아남은 자들이 만들어낼 세상을 예고한다. 역병에서 세상을 건지기 위해 먼 길을 떠난 세자 창과 의녀 서비의 모습 위로, 방호복을 입은 현장 요원들과 의료진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들의 여정이 끝까지 안전하기를, 부디 평안하기를, 그래서 평화로운 시즌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바란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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