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출신 무용가 최승희의 ‘재조명’
엇갈린 역사적 평가 불구 예술 업적 주목
안무이름 딴 남화연 개인전 ‘마음의 흐름’
다년간 연구물 작품·퍼포먼스로 재구성
월북이후 행적 발굴 서적 ‘최승희 무용…’
그간 볼 수 없던 해외공연·가족사진 수록

▲ 러시아문학예술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는 최승희의 서명이 담긴 사진. 날짜는 1957년 1월 7일이라고 써있다.
▲ 러시아문학예술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는 최승희의 서명이 담긴 사진. 날짜는 1957년 1월 7일이라고 써있다.

[강원도민일보 김여진·한승미 기자]화려하고 신비로운 몸짓으로 전세계를 매혹시켰던 1920년대 스타,최초의 한류 예술가로 평가받는 홍천 출신 무용가 최승희(1911∼1969)가 올 봄 다시 조명받고 있다.최승희의 삶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을 재해석해 온 작가의 연구를 통해 하나의 전시회가 완성됐다.월북 이후인 1950년대 소련 활동사진을 처음 발굴,수록한 책도 나왔다.친일 행적으로 비판받았고,북한에서 숙청되는 등 굴곡진 삶 속에 평가가 갈리지만,예술가로서의 그는 여전히 다양한 장르와 형태로 현대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 전시로 다시 태어난 최승희

내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남화연 개인전 ‘마음의 흐름’은 최승희 안무의 이름이다.남화연 작가가 처음 최승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2년.당시 ‘페스티벌 봄’에서 최승희를 주제로 한 극장 퍼포먼스 ‘이태리의 정원’을 선보였고 2014년 관련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201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반도의 무희’ 영상 등을 선보였다.

▲ 남화연 작 ‘습작’
▲ 남화연 작 ‘습작’

작가가 최승희에 주목한 이유는 그의 삶이 ‘역사의 시간이 관통하는 신체’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이번 전시회는 다년에 걸친 최승희 연구와 이를 기반으로 만든 작업물을 정리하는 자리다.작가가 모아 온 최승희에 대한 자료와 함께 그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 영상과 설치 작품,퍼포먼스 등을 보여준다.

전시타이틀 뿐 아니라 작품명 대부분도 최승희 안무 이름에서 땄다.남 작가는 안무 ‘마음의 흐름’에 대해 남아있는 사진 2장과 당시 공연에 대한 평론가의 짧은 글을 참고,상상을 펼쳤다.무용의 동선을 상상한 드로잉에 음악을 더한 동명의 설치작품(2014년 작)과 바닥 설치물에 조명을 비춰 움직임을 표현한 설치작품(2020년 작)이 모두 전시된다.최승희의 움직임을 점토로 형상화한 ‘습작’도 눈길을 끈다.‘습작’은 1935년 최승희가 로댕의 ‘키스’(1882)에 영감을 받아 만든 춤으로 알려져 있다.남 작가는 로댕과 최승희의 작품을 재해석했다.영상작업 ‘칠석의 밤:아카이브’는 일본군 위문공연으로 친일논란을 불러 일으킨 최승희의 공연 ‘칠석의 밤’(1941)에서 가져왔다.영상은 ‘에헤라노아라’와 ‘세레나데’ 작업과정을 복기하면서 남긴 메모와 드로잉,퍼포먼스 기록들로 구성됐다.

▲ 남화연 작 ‘사물보다 큰’
▲ 남화연 작 ‘사물보다 큰’

이밖에 최승희가 일본 무용계에 처음 선보인 해학적 작품 ‘에헤라노아라’를 재구성한 퍼포먼스,최승희 작품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궤적을 좇는 ‘풍랑을 뚫고’ 등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최승희의 안무 ‘마음의 흐름’에는 두 사람이 마주했다가 다시 거리를 두는 동작이 있는데 남화연과 최승희의 만남에도 적용된다”며 “서로 다른 시간과 역사를 살아온 두 사람과 실제와 픽션 사이에서 출현하는 것들이 그려내는 궤도를 목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모스크바에서 만난 최승희

▲ 민속원에서 최근 출간된'최승희 무용연구소의 소련 순회공연1950~1957 ’
▲ 민속원에서 최근 출간된'최승희 무용연구소의 소련 순회공연1950~1957 ’

출판사 민속원이 펴낸 ‘최승희 무용연구소의 소련 순회공연 1950∼1957’에는 그간 공개된 적 없는 최승희의 사진자료들이 수록돼 있다.1946년 월북한 최승희가 평양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한 후 해외공연을 펼쳤던 1950년대 행적들이다.고려인 연구를 해 온 배은경 박사(당시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2017년 모스크바 러시아문학예술문서보관소에서 이들 자료를 찾았다.스탈린 등 소련 유명인사 촬영을 전담해온 사진작가 야브노 예브게니 이오노비치의 개인 폴더에 오래 방치돼 있었다가 배 박사가 처음 열람했다.최승희 자료는 국내에 워낙 적고,북에서도 소각된 것으로 알려져 그의 중년 모습을 담은 이번 사진의 사료적 가치는 크다.

해외를 순회했던 최승희와 단원들의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공연,장고춤·부채춤 추는 모습,연회 참석,견학 사진 등과 북한 문화선전부 부수상을 역임한 남편 안막,딸 안성희의 사진도 볼 수 있다.1957년 러시아어로 발행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승희 국립무용연구소’라는 책 번역본 등도 실었다.

최승희는 예술적 성과와 별개로 일본군 위문공연 등의 친일 행적으로 여전히 논란에 서 있다.홍천 남면 제곡리 생가 등을 중심으로 선양사업 움직임이 있었는데 독립운동 단체 등의 거센 반대로 중단됐다.사상가,예술가로서 엇갈리는 역사적 평가를 온전히 하기 위해서도 최승희 관련 사료 발굴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민속원은 “최승희의 월북 후 인생은 그녀처럼 무용가로 성장하던 딸 안성희를 위한 삶이었다.최승희 연구를 위한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여진·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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