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교구의 요람 곰실공소
동내면 옛명 딴 ‘곰실’ 공소설립
강원 신앙·죽림동 본당 모태
전국서 부활절 맞이 순례 발길

▲ ①곰실공소 전경. ② 초기 죽림동성당 모습.
▲ ①곰실공소 전경. ② 초기 죽림동성당 모습.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올해는 천주교 춘천교구(교구장 김운회) 죽림동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죽림동 성당의 모태인 춘천 동내면 곰실 공소도 그 역사를 같이 한다.춘천교구와 죽림동 성당은 기념비적인 해를 맞아 강원도 신앙의 뿌리를 찾고 본당 역사를 되돌아 보기 위한 다양한 100주년 연중행사를 기획해왔다.특히 오는 12일 부활절을 맞아 부활대축일 미사를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현실을 바꿨다.사상 첫 무기한 미사중단에 따른 ‘고요’속에 부활절을 맞게 됐다.주일 미사 대신 곰실공소 입구에 피어 있는 노란 개나리가 깊어가는 신앙 갈증을 풀기 위해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해 100주년을 맞은 죽림동 성당 역사의 시작은 동내면에 자리한 곰실 공소부터다.미사 중단과 부활절행사 취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신자들이 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 엄주언 말딩
▲ 엄주언 말딩

곰실은 ‘곰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춘천 동내면의 옛 지명이다.곰실 공소 설립은 엄주언 말딩(마르티노)의 노력으로 가능했다.젊은 시절 천주교 교리에 크게 감복한 엄주언은 1910년 동내면 ‘윗 너부랭이’라는 지역에 임시 시설을 세워 천주교 의식을 진행했다.생명력이 강한 곡식을 간신히 부쳐 먹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진 이 거친 땅에서 화전밭을 일구며 집과 강당을 짓는 등 공소 예절을 갖춰 나갔다.횡성 풍수원 성당의 정규하 신부가 1년에 3∼4차례 사목을 진행하기도 했다.신자들이 늘자 엄주언은 1920년 현재 위치에 곰실공소를 건립하고 횡성 풍수원본당과 명동성당을 오가며 상주 사제 파견을 열성적으로 요청,같은 해 경성교구로부터 본당 인가를 받았다.이 때 신자 수는 138명이었다고 전해진다.

▲ 이응현 신부
▲ 이응현 신부

20년째 곰실 공소 사제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응현(95) 신부도 고요 속에 공소 100주년을 돌아보고 있다.북강원도 이천 출신으로 춘천교구 최고령 사제이자 1960년대 풍수원 성당의 주임 신부를 역임,곰실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이 신부는 “2008년 공소 중건 이전에는 초갓집 같았다.그 때는 돌 담장 너머까지 40∼50명이 신자들이 몰리곤 했었다”고 회상했다.

곰실공소는 원래 미사가 이뤄지는 곳은 아니지만 전국 각지 신자들의 성지 순례가 이어지고 있다.

공소 방명록에는 “코로나19를 빨리 없애주시고 미사를 하루빨리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평화를 빕니다” 등의 문구가 늘어나고 있다.

공소 내부는 단출하다.화려하지 않아서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다.마스크를 쓰고 공소를 찾은 신자들은 “미사 중단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러 왔다”고 했다.성지순례차 왔다는 함영희(에스텔)씨는 “미사가 장기간 중단돼 마음이 답답했다.곰실공소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방문했다”며 “한국전쟁 당시 외국 신부들의 활약상을 함께 새기고 갈 수 있어 좋다”고 했다.서울에서 온 한 신자 부부는 “곰실공소는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고 기도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큰 성당을 방문할 때보다 더 큰 마음의 안식을 얻고 간다”고 했다.

죽림동 성당 본당도 미사가 없지만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호스피스 역할을 자처했던 역사를 되새기고 있다.홍기선 주임신부는 “죽림동 성당의 역사가 곧 춘천교구 역사다.영적인 모태로 사회적 역할도 꾸준히 책임져 온 만큼 기독교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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