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남 <본사 논설고문>

 여의도 국회 앞에 솟대 하나 높직이 세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솟대 위에 날개 튼튼한 새 한마리 얹어 놓으면 멋질 것이다. 그 새가 철새면 더욱 좋고. 국회와 국회의원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가당치 않다고 할지도 모른다.
 옛날 우리 선인들이 신성한 영역에 세웠던 솟대를 세워줄만큼 지금 우리 국회가 신성한 민의의 전당 구실을 하고 있느냐고 눈을 흘길지도 모른다. 국회의원들도 솟대는 좋은데 왜 하필이면 철새를 얹느냐고, 국회의원을 싸잡아 철새로 여길테냐고 볼멘 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다. 우리 고대사에서 소도(蘇塗)는 고을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성역이었다. 소도(솟대)를 세우고 방울을 달거나 나무로 만든 새를 올려놓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로 삼았다. 고을마다 천군(天君)을 뽑아 소도를 세우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임무를 관장케 했는데 제사를 지내는 기간에 소도는 지배자의 권력도 미치지 못하는 신성한 영역이었다.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제사를 지내는 기간에 소도로 숨어들면 잡아갈 수 없었다. 이쯤 얘기를 늘어놓으면 여의도 국회 앞에 왜 솟대 하나 높직이 세우자고 하는지 이해가 될것이다.
 솟대 위에 철새 한 마리 얹어놓자는 말에 국회의원들이 발끈하고 나서거나 볼멘 소리를 할 것도 아니다.
 새는 우리 조상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전령이었다. 땅과 하늘 사이를 날며 인간의 소망을 하늘에 올리고 하늘의 뜻을 인간에 전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그중에 철새는 농사철을 알리고 비를 몰아다 주는 고마운 전령이었다. 솟대 위에 올리는 새가 오리 기러기 해오라기 따오기 같은 물새 종류였고 그 물새들이 대부분 철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된다.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철새로 여기자는 뜻은 추호도 없다.
 엊그제 국회가 다시 문을 열었다. 8월 임시국회가 시작된 것이다. 학교도 방학을 하고 대부분 직장인들이 휴가를 떠나는 염천에 회기를 한달씩이나 잡아 국정을 진지하게 의논하기로 했다니 얼마나 가상한 일인가. 그런데도 국민들은 콧방귀를 뀌며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흘린다.
 이른바 방탄국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여당 의원 2명과 야당 의원 1명을 붙잡아다 조사를 하겠다니까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야가 짝짜꿍해서 8월 임시국회를 소집하자고 합의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신성한 솟대밑으로 숨어들면 잡아갈 수 없었던 옛날 우리 조상들의 법처럼 죄를 지은 국회의원이 국회 회기중에 국회동의없이 체포되지 않는다는 법을 교묘하게 써먹기 위해 국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뱃속 검고 낯 두꺼운 게 정치인들이라지만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던지 그들은 임시국회의 명분을 민생국회라고 강변한다. 주5일근무제 증권관련집단소송제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 칠레와의 FTA비준동의안 등 시급하고 중대한 민생·경제관련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8월 임시국회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진작에 처리했어야 할 민생 현안들이 국회에 그냥 쌓여있으니 임시국회라도 열어서 국민들 불편을 하루빨리 덜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7월 한달 임시국회 회기를 어영부영 흘려보내고 9월 정기국회를 기껏 한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서둘러 8월 임시국회를 소집한 속내가 아무래도 따로 있지싶은게 국민들 짐작이다.
 임시국회 회기를 한달씩이나 잡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외유 좋아하고 골프 좋아하고 지역구 관리도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한여름 8월 한달 내내 국회에 모여 안건을 처리한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처리할 안건들을 한 달동안 처리하겠다는 속셈이 무엇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알텐데도 국회의원들은 '산적한 민생현안'을 강조하며 절대로 방탄국회가 아니라고 변명한다.
 여야 의원들 말대로 8월임시국회가 방탄국회가 아니라 산적한 민생·경제 관련 법안을 해결하기 위한 민생국회라면 제일 먼저 국회의원 3명에 대한 체포동의안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임시국회의 명분도 분명해지고 안건을 처리하는 국회의원들도 떳떳해진다. 체포동의안 처리를 뒤로 미룬 채 국회 문만 열어놓고 띄엄띄엄 모여 이번에 한 건 다음에 한 건 식으로 안건을 처리한다면 방탄국회 솟대국회란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긴 국민들의 비난에 눈 하나 깜짝 않는 사람들이라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고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어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을 터이다. 아무래도 여의도 국회 앞에 높다란 솟대를 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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