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남 감독 영화 ‘화절령에서’
역사 품으려는 주민 힘 보태고자
사북항쟁 전후 광부들 삶 기록
“정당하게 역사에 기록됐으면”

▲ 촬영 중인 영화 장면 중 일부.
▲ 촬영 중인 영화 장면 중 일부.

[강원도민일보 한승미 기자] 21일은 사북항쟁 발생 40주년이 되는 날이다.사북항쟁은 정선 사북 동원탄좌 노동자와 가족들이 1980년 4월 21일부터 나흘간 벌인 항쟁으로 고된 광부의 삶과 노동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그러나 당시 계엄사령부가 폭도로 규정,당시 관계자들은 아픈 상처와 누명 속에 살아왔다.도와 정선군,사북민주항쟁 40주년기념행사추진위 등은 당초 21일부터 사북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재정립할 기념식을 갖기로 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6월로 연기됐다.도내 예술인들도 ‘사북,늦 봄’을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는 등 문화적으로 기억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하다.



이런 가운데 사북항쟁을 영화로 기록중인 다큐 감독이 있다.한국독립PD협회에서 활동중인 박봉남(사진) 감독이다.박봉남 감독은 곧 강원도에 터전을 잡을 예비 도민이다.원주에서 3년 살았던 경험도 있다.하지만 사북과 직접적 연고는 없다.그런 그가 왜 사북항쟁을 필름에 담게 됐을까.박 감독은 사북항쟁 40주년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10년만에 연락한 대학 선배 황인욱으로부터 정선을 기록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황인욱씨는 사북항쟁의 중심에 섰던 황인오 사북항쟁특위 위원장의 동생이다.하지만 바로 수락하지는 못했다.그는 “세월호 참사 기록 이후 타인의 상처로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했다.박 감독은 미국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던 영화 ‘부재의기억’ 제작에 공동 참여했던 이력이 있다.고민 끝에 사북행을 택한 것은 “사북을 문화와 역사적 자산으로 품으려는 지역민들의 시도를 보면서 힘을 보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는 결국 지난 해 4월부터 사북 곳곳을 발로 뛰기 시작했다.

▲ 사북항쟁동지회의 도보시위를 촬영하고 있는 박봉남(사진 가운데) 감독.
▲ 사북항쟁동지회의 도보시위를 촬영하고 있는 박봉남(사진 가운데) 감독.


박 감독은 사북항쟁 관련 행사나 도보시위들을 스케치하면서 영화 방향을 고민했다.9월 강원영상위원회 기획개발지원작 공모에 당선,11월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그는 주요 취재원들을 인터뷰하면서 작품 방향을 잡고 다큐멘터리 시나리오(트리트먼트)를 정리했다.핵심 스태프도 꾸려졌다.한경수 프로듀서와 원주 출신 부성필 촬영감독이 함께하기로 했다.

영화 제목은 ‘화절령에서’로 정했다.화절령은 동원탄좌라는 대규모공장이 들어서기 전 소규모 탄광들이 자리잡았던 곳이다.박봉남 감독은 “화절령은 한국 산업화의 불기둥 역할을 했다.이곳이 사북의 시작”이라며 “화절령에서 사북을 바라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이를 강조하기 위해 ‘1980년 사북을 바라본다’라는 부제도 달린다.

영화는 노동과 상처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를 갖고 전개된다.박 감독은 “사북사건이 터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가혹했던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광부들의 고통”이라며 “영화는 사북사건을 전후한 그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현재까지 아물지 않고 있는 두 축의 상처에 대해 다룬다”고 했다.그는 사북 안에 깊숙히 들어가 있으면서도 제3자의 시선을 유지한다.박 감독은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온 주민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해를 입힌 부분에 대한 공식 사과도 필요하다”며 “상처들을 드러내고 사과할 지점은 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함께 언급할 것”이라고 했다.이를 위해 그는 ‘항쟁’이라는 표현 보다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로 40주년 행사가 6월로 연기돼 촬영일정도 순연,제작과 개봉일정도 조금 늦춰졌다.가을까지 추가촬영을 하고 내년 공개,하반기 극장개봉을 계획 중이다.그는 완성 후 영화제 출품에 앞서 사북항쟁 관계자들에게 먼저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박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북의 역사를 끌어안고 싶다고 했다.“사북의 이야기가 정당하게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사북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아픈 상처를요.” 한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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