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 영서본부 취재부국장

 강원도와 아프리카.
 쉽게 조합되지않는 이 두지역 사이에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좀 더 좁혀보자면 강원도 춘천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의 관계가 그렇다. 두 나라 양 지역의 관계는 어쩌다 그저 그렇게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그야말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맹의 인연이다. 이역만리 두 지역이 남다른 인연을 갖게 된 배경은 바로 6·25전쟁이다. 참담한 전쟁이 50여년간 엄청난 인연을 이어오게 한 단초가 된 셈이니 역사가 빚어내는 역설을 새삼 되새겨 보게 한다.
 춘천 공지천변에는 '이디오피아(에티오피아)의 집'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50년인연의 대표적인 징표다. 많은 사람들이 춘천하면 '이디오피아의 집'을 연상할 정도였고, 경춘선을 타고 주말여행을 나선 젊은이들이나 외지 관광객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였다. 그래서 춘천시민들도 '춘천에는 이디오피아의 집이 있다'고 자신있게 명함을 내밀 듯 자랑삼아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낯선 이름의 커피숍이 전쟁이 남긴 소산이라는 사실에 크게 유념하지 않는다. 대개는 한없이 평화로운 '천변(川邊) 풍경'으로 받아들인다.
 공지천으로 탁트인 커피숍의 창가에 앉으면 한가로이 물놀이를 하는 풍경이 목가적이다. 이 곳을 거쳐 갔을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아니라 낭만과 평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길 건너편 에티오피아 참전기념탑이 오늘도 전쟁이 맺어 준 인연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는 침략을 응징하기 위한 UN안보이사회의 모든 결의를 즉각 지지하고 나섰다. 에티오피아는 1935년 10월 이탈리아의 뭇솔리니군의 침략을 받고 당시 국제연맹에 호소했으나, 도움을 받지못했던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는 터 였다. UN의 참전요청을 받은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1세는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지상군 파견을 결정하고, 곧바로 황실근위대로 칵뉴부대(Kagnew)를 편성했다. 또 다음해인 1951년 4월13일 수도 아디스아바바 궁정에서 파병1진 출정신고식이 거행됐다. 황제는 "국제평화와 인류의 자유수호를 위해 침략자에 대항하여 용전(勇戰)하라"고 환송했다. 사흘뒤인 4월16일 칵뉴부대 1대대 장병 1천185명이 인근의 지부티항에서 미군수송함에 승선, 20일간의 긴 항해 끝에 1951년 5월6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시작된 에티오피아의 참전병력은 총 6천37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253회의 전투에 참가했다. 또 전투 중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당했다. 병사들은 주로 철원을 비롯한 강원도지역 중동부전선의 전투에 참가했으며 단 1명의 포로도 없는 것으로 전사(戰史)는 이들의 용맹을 전하고 있다.
 
 그들이 참전했던 한반도에서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오늘 이만큼의 평화와 안정을 얻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그들이 가난과 질병에 맞서 힘겨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3년간의 한국전에 참전하고 돌아간 병사들의 조국에는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뭄과 가난과 질병과 내전의 시련이 이어지면서 르완다 소말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빈국 소리를 듣는 형편이 됐다. 지난 7월16일 춘천시에서 열린 기관단체장 모임인 수요회에서 에티오피아의 참전용사회관 건립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이 거론됐다고 한다.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없지않으나 자치단체와 지역의 각급 기관단체장들이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 회관건립사업은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이 궁색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1천500여 생존노병들에 전시실을 갖춘 사무실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딱한 사정이 여러경로를 통해 전해지면서 국회에서도 다음달 5일 바자회를 준비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마당이다.
 참전용사회관이 세워지면 아프리카의 관문인 에티오피아 수도 한복판에 강원도와 춘천을 알리는 다목적 교두보 역할을 할게 분명한데 당사자들이 주저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당장 이 나라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관문이자, 수장(首長)국가로서의 상징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특별한 연고가 없는 대전직할시가 아디스아바바시와 자매결연을 추진해왔던 사실이나, 한남대가 지난해 7월 아디스아바바 국립대에 한국학과를 개설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데 주목하게 된다. 에티오피아, 혹은 아프리카에 대한 엄청난 '연고권'을 앉아서 빼앗기고 있다면 딱한 노릇이다.
 에티오피아를 돕는 일에서 '보은(報恩)이상의 의미'를 찾는 혜안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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