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 광 복 논설위원

대가(現代家)의 사람들이 요즘 국민을 '슬프게 했다, 울리게 했다'를 하고 있다.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죽음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의 '하이칼라' 헤어스타일이나 투박한 안경테,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 청년 같은 말투는 재벌 총수로서 좀 안 어울린다는 사람이 많았다. 대북사업의 아슬아슬한 곡예를 보면서도 그가 선친의 유업을 이어가는 효자지만 경제에는 밝지 않나 보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몸을 던졌다는 1보가 TV 자막으로 나왔을 때도 대뜸 '오냐, 오냐'로 자란 귀공자들의 참을성의 한계를 생각한 이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재벌 왕손'이거니 했던 것이 대체적인 선입견이다. 그러나 1948년 9월 14일생인 그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29살에 현대건설 이사 겸 부장이 될 때의 기억처럼 애송이 기업인은 더욱 아니다. 대북사업도 당장은 돈이 안 되지만 머지 않아 펼쳐질 한반도 판도를 예측한 무언가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았다. 경제가 아니라 민족, 동포, 국가를 염두에 둔 철학으로 봤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모든 걸 내가 가지고 간다"는 그 비장함을 몇 시간 전 술자리의 막역한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내비치지 않는 인내력을 보일 만큼 강자였다. 그런 그의 의외성이 모두 그의 상중(喪中)에야 밝혀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 앞에 사람들이 숙연해 지고 있는 것이며, 새삼스럽게 예서저서 "남북경협은 계속돼야 한다"는 소리가 들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엊그제 그의 영결식장에서 그가 금강산에서, 개성에서 이룬 업적을 놓고 "빼앗긴 정치·군사 주도권을 대체할 수 있는 자주적 경제소통채널을 확보했다"는 조사(弔辭)에 모두 고개를 끄떡인 것이고, 가슴에 태극기를 두른 40대 남자의 '당신은 진정한 조국의 아들이었고 효자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할 차례입니다'란 현수막 시위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아산 곡간은 '빈털터리'인줄 알았는데 그렇게 속이 꽉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상중(喪中)에 망인의 맏형 회사에서는 대한민국 재계사상 초유의 기록이 달성됐다.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 노는데도 가장 앞서가는 프랑스의 근로자들은 연간 150일을 휴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이 엊그제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에서 깨져버렸다. 노사가 주5일제 근무에 합의하면서 남자는 연 165일, 여자는 177일을 휴일로 보낼 수 있게 됐다. 365일 동안 '하루 일하고, 하루 쉬고'를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하고도 생산직은 평균 임금이 연봉 5천∼6천만 원이나 되는 한국최고 월급쟁이들이 됐다. 그러나 지상 최고의 근로자 환경에 대해 세상의 눈이 곱지 않은 것은 부러워 죽겠다는 시샘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차 노사가 이 나라 '리더 노사', 맏형과 같은 존재라면, 1조4천억 엔이 넘는 경상이익을 내고도 기본급 동결을 선언했던 일본 도요타 노사를 본받을 수는 없었느냐는 따위는 이미 엎질러 진 물에 대한 미련일 뿐이다. 재계는 현대차 노조의 기막힌 성공에 고무된 불길이 온 기업에 옮겨 붙게 될 상황에 치를 떠는 것 같다. 사장들은 줄줄이 무릎을 꿇게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경제는 끝장이라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다. 솔직히 현대차의 파격은 모든 봉급생활자의 기를 팍 꺽어 버렸다. '1등 신랑감으로 의사 판사 검사 다음에 현대차 순'이라든가, '내 자식은 닦고 조이고 기름칠시키자'는 네티즌들의 조소는 사실이 돼버렸다. '심야토론'이었던가, 현대차의 파격은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다는 지적에, "없기는 스웨덴 같은 나라가 그 실례"라고 현대차 노조 옹호 억지를 부릴 때는 정말 분통이 터졌다. 현대차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순전히 국민 덕이다. '포니'를 국민차라고 믿고 있는 이상 현대차는 국민의 기업이다. 수입차에 살인적인 관세를 내면까지, 국민이 보호해 준 그 독점 이윤을 지금 나눠먹기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여력이 있으면 벤츠 BMW, 볼보, 도요타, 미국의 '빅3' 정도의 명차를 만들어 경쟁력을 키워야지요."
은 그 옛날 왕회장이 반값 아파트를 공약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니면 차 값을 내리든지", 또는 엊그제 정몽헌 회장의 장례식을 보던 이들은 "차라리 동생이 목숨 끊은 현대아산이나 도와주든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분명한 것은 현대차의 곡간을 국민이 더 이상 채워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함 광 복 논설위원 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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