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축전과 曺五鉉 스님

 지난 주 만해 한용운 선사를 기리는 제5회 만해축전이 성대히 열리고 또 아름답게 끝났다. 만해마을이 새로 만들어지고 처음 열린 이번 축전을 만일 만해가 보았다면 그야말로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한 자리'라며 놀라고 감사하고 행복해했을 것이다.
 이런 자리를 누가 만들었는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만해마을에 세워진 '만해문학박물관' '만해사' '문인의 집' '만해학교''심우장' 등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말 그대로 공(空)과 색(色), 유와 무가 온전히 결합해 강원도다운 깊은 맛이 우러나는 건축 문화를 창조해내고 있으나, 이 외형만 보고 감탄할 따름이라면 만해축전을 준비한 사람에 대한 예가 아닐 것이다.
 총리에 전화 축전 지원 얻어내
 만해축전은 전적으로 현재 설악산 산감, 백담사 회주로 계시는 무산(霧山) 조오현(曺五鉉) 스님의 작품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었다. 어느 날 국무총리 집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결려 와 자신은 "절간의 한 중일 따름인데, 국무총리 당신은 만해 한용운 선생을 아시는가?" 하고 묻더란 것이다. "만해를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국무총리의 대답에 '절간의 한 중'은 "그렇다면 만해축전을 열 것이니 20억 원을 내라." 하더라지 않은가. 그리하여 졸지에 당시 20억 원을 내게 된 당시 이수성 전 국무총리는 엊그제 만해축전 개회식에서 이 비화를 얘기하며 참석자 모두를 즐겁게 했다.
 모든 중생은 갈등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며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총재이신 김법장은 중생의 갈등을 만해 선사의 시로 설법하셨다. "잠자리에 들면 꿈이 괴롭고, 달 밝은 밤이면 생각만 많네, 한 몸에 적이 둘이나 되다니, 아침마다 흰머리만 늘어나네."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은 이렇게 늘 갈등하게 마련인데, 이수성 총리를 단 한 순간에 그 갈등의 그물망에서 건져내 기꺼이 축전을 지원할 결심을 굳히게 만든 조오현 스님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법명은 무산, 법호는 만악(萬嶽), 자호는 설악(雪嶽), 필명은 조오현. '내가 나를 바라보니'라는 시에서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며 스스로를 미물이라 하시는 분이다. 오현 스님은 지금도 '하루는 풀벌레로 울고, 하루는 풀꽃으로 웃으면서' 백담사에 머물고 계신다. 그의 경지는 어디까지인가? '무산심우도' '제1심우(尋牛)'에서 스님은 "누가 내 이마에 좌우 무인(拇印)을 찍어 놓고, 누가 나로 하여금 수배하게 하였는가, 천만금 현상으로도 찾지 못할 내 행방을." 하며 본디의 자신을 찾으려 오늘도 이렇게 괴로워한다.
 음미하고 또 음미해 보라. 그의 경지는 여기까지이다. 이런 오현 스님은 축전기간 내내 모든 행사를 손수 챙기고, 모든 사람을 직접 만나고, 모든 인연을 자비로 엮으면서 백담사와 만해마을을 두루 살피고 계셨다. 캉캉한 얼굴을 짱땅그리며 사대색신을 오탁악세(五濁惡世) 속에 더럽히며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그야말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이시며 일을 다스리고 사람을 보살펴 스님은 드디어 만해축전을 성공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물아일체 경지 넘나들어
 만해는 시 '당신이 아니더면'에서 "당신이 아니었더면 보드랍고 매끄럽던 얼굴에 왜 주름살이 접혀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아요." 하고 노래했는데, 여기서의 '당신'은 물론 '님'이되 우리는 오늘 얼핏 오현 스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만해와 오현은 서로가 서로에게 님이며 당신이며 부처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선정(禪定)이며 깨달음이며 득우(得牛)다.
 그렇다. 살아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축전을 보여주신 조오현 스님은 정말 아름다운 산승(山僧)이시다. 자신의 시 '산승·1'에서 노래한 그대로. "차라리 외로울 양이면, 둥글지나 마올 것을, 닫은 문 산창 가에, 휘영청 뜨는 마음, 살아갈 이 한 생애가, 이리 밝아 적막하구나." 만해축전 뒷날, 번뇌의 세상 아아, 이리 밝아 참 아름답구나.
이 광 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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