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광복 논설위원

 한탄강댐 반대 시위가 경기도계(道界)를 넘어 철원으로 번지는 동안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당사자도 잠자코 있던 그날,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기자회견을 빌어 한탄강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 이유를 놓고 며칠 째 시중의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경기도 댐'을 놓고 왜 철원사람들이 시위를 하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광화문까지 상여를 앞세운 도보행진을 결행키로 할 만큼 그렇게 사생결단의 사안이냐는 것이다.
경기도 편입설까지 나오는 곳이니까 경기도민 동조시위 아니겠느냐는 얘기도 없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김 지사가 철원군민을 달래려는 다분히 정치적 제스처를 썼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의 해석이다. 그러나 그건 철원사람들을 더 화나게 하는 해석이다.
조금만 귀 기울여 들으면 철원사람들이 댐이 생기면 '안개가 많이 끼고, 자연생태계가 파괴될 뿐 아니라 구절양장의 한탄강 비경을 다 수장시킨다'고 주장하는 그 원칙적이고 보편적인 댐반대 이유 이면에 숨은 얘기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정부는 상습홍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댐을 세운다는 주장이다. '수해로부터 해방', 그것은 '댐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민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좋은 구실이다. 그러나 물이 부족해 댐을 막는다는 밝힐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밝힐 수 없는 속사정'을 유추하면 이런 내용 아니겠는가. 우선 한탄강댐을 처음 계획할 때의 임진강 사정과 현재의 사정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임진강은 무려 250개의 '새끼 강'을 거느리고 북한에서 흘러오는 강이다. 휴전선 남쪽에서 한탄강을 만나기까지는 고스란히 북한의 강이다. 이 강은 유난히 토사를 많이 싣고 흐르는 특성이 있다.
다 아는 것처럼 북한의 산들은 빡빡 머리 민둥산이다.
자연히 한강과 만나는 하구에는 만조 때 바다에서 쓸려 온 토사까지 가세해 둑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둑이 96년, 98년, 99년 문산, 전곡, 동두천의 물난리를 일으켰다. 임진강 하구가 막히자 물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역류한 임진강물은 한탄강도 거꾸로 흐르게 했다. 결국 한탄강이 둑을 타 넘은 것이다.
한탄강댐은 바로 그 상황설정에 따라 계획된 것이다.
 그러나 한탄강댐 논쟁을 하고 있는 사이 사정이 달라졌다.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2001년 3월에 2개, 지난해 5월에 2개 모두 4개의 댐을 세웠다.
요즘은 임진강물을 예성강으로 흘러보내는 유역변경식 댐 황강댐을 건설 중이다.
물을 일시에 내려보내면 대홍수이고 수문을 꽉 잠그면 물 기근이다.
완전히 금강산댐을 패러디 한 것이다. 정부는 북쪽에서 물이 일시에 내려올 때를 대비해 임진강 하류에 군남홍수조절지를 짓기로 했다.
그것도 파로호를 비워두고 있는 것과 꼭 닮았다. 홍수는 그렇게 예방한다고 하자.
 그러나 물 기근의 딱한 사정은 어떻게 해결할 건가. 그러니까 한탄강댐이 더 급해진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탄호'는 경기도에 생기지만 그 호수의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은 모두 철원 땅에 있다.
수도권 맑은 물 공급 때문에 춘천사람들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처럼, 한탄강, 남대천에서 '한탄호'에 맑은 물을 공급해야 할 의무가 지워진 철원사람들도 분명히 아무 것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100% 군사보호지역, 예정된 자연생태계보호지역, 이젠 무언의 '수자원보호지역' 협박을 받고 있다는 강박관념이 온통 철원평야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자원공사 관계자가 "홍수위라도 순담계곡 물이 10㎝밖에 상승하지 않아 철원은 수몰될 땅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가 큰 코를 다쳤다고 한다.
그 양반 강원도사람을 핫바지로 아는지 참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댐 건설비용 1조2천억 원 가운데 공사비는 4천500억원인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다 보상비다. 정부가 경기도 사람들은 보상비라도 받지만, 철원 사람들은 단 한푼 보상도 없이 댐 폐해는 고스란히 덮어쓰고 있다는 그 간단한 계산도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김 지사는 철원은 남북물류교류의 중심지가 될 미래의 땅이란 말을 자주 했다.
도지사도 이번에 이래가지고는 미래의 땅커녕 변방의 땅이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모양이다. 도지사도 '댐 반대'를 외쳤으니 철원사람들에게는 힘이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철원사람들의 목소리 귀담아 듣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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