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는 사라(Sarah)를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였다가 그의 아내가 된 여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죽는 날까지 파란만장한 긴 유랑 길에 아브라함의 반려자가 됐던 여인이다. 그녀는 경건한 아내의 모범이며 신앙인의 표본이다. 그러나 성서 밖에서 사라는 그렇지 않다. 1959년 9월, 그때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라면 수해의연금을 들고 등교했던 태풍 사라(Sarah)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에게 사라는 분명 표독한 여인일 게다. 문제작 '즐거운 사라'의 '사라'는 부정한 여인이다. 그 소설을 기억하는 이에게 사라는 정숙지 못한 여인일 게다. 어쨌든 한국인이 경험한 사라는 절대로 경건한 아내의 모범은 아니다. 더구나 소설 속의 사라는 절대로 신앙인의 표본은 될 수 없다.
 태풍 매미(Maemi)가 하룻밤 새 한반도를 휩쓸고 동해를 건너 북동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침 추석 장사씨름대회가 열렸다. 안 다리 걸기로 들어오는 상대를 잽싸게 배지기로 받아내던 챔피언의 힘의 속도를 보았을 것이다. 상대를 큰 대자를 모로 세운 것 같은 자세를 만들어 놓고 뿌리치듯 쓰러트리던 그 기술은 차라리 내 동댕이친다거나 뿌려버린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매미'의 모습이 꼭 그랬다. '매미'가 오키나와 군도를 지나 제주도, 이어 남해안으로 목표를 설정했을 때 이미 우리는 다리 번쩍 들린 상대 장사처럼 정신이 아찔해져 있었다. 그런 우리를 '매미'는 인정사정 없이 내 동댕이치거나 뿌려버리고 떠나 버렸다.
 그 '매미'가 태풍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는 모든 부문에서 '극값'을 경신했다는 사실이 우울한 요 며칠 새 그래도 화제다. 44년 동안 최고 기록 보유자이던 '사라'가 뒷자리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부산항 대형 크레인 11개가 박살난 피해를 화물연대 파업보다 더 큰 손해라고 비유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물류 효과까지 감안하면 6조원의 피해를 낸 작년 '루사'를 능가할 지 모른다. 그러나 '사라'와 '매미'는 그렇게 수치 놀음의 단순비교나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반세기 시공을 두고 나타난 두 태풍의 모습이 너무 닮았는데, '매미'와 '사라'가 등장한 사회적 정치적 환경까지 매우 유사하다는 자각이 지금 아주 절실하다.
 철원 근남면 마현리 울진촌 사람들은 '사라'에 논밭전지를 다 잃고 유토피아를 찾아 나섰던 '태풍 유민'이다. 그들 얘기를 빌리면 그해 농사는 영 글러있었다. 봄내, 여름내 물싸움 유혈극이 벌어지는 장가뭄 끝에 장(長)장마가 시작됐다. 낙동강 둑이 넘칠 뻔했고, 산사태로 곳곳에서 사람이 죽었으며 이재민 5만 명을 발생해 놓고 비가 멎었다. 쭉정이 벼만 남은 가을 벌판을 바라보며 추석을 맞았는데, 차례 상을 물리는 순간 태풍이 들이 닥쳤다. 가으내, 겨우내 굶기를 밥먹듯 하다 예순 여섯 세대가 철원 민통선 지뢰밭을 향해 봇짐을 쌌다. 1960년 4월 7일이다. 12일 후 4·19가 일어났다. 새로 태어난 민주당 정권은 태풍유민을 알지 못했다.
 새 대통령, 새 국회의원, 새 도지사, 새 군수는 민통선 골짜기에 봇짐을 푼 자신들의 국민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울진촌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정부가 국민을 잊고 있던 그 고독하고 무시무시하던 날들을 지금 살을 에는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다.
 봄내, 여름내 장(長)장마였다는 것만 다를 뿐 쭉정이 벼를 바라보며 올 추석을 맞은 것은 그때나 똑같다. 작년 '루사' 수재민이 아직도 수재민을 못 벗어난 이가 수두룩한 것도 그때와 유사하다. 차례 상을 물리는 순간 들이닥친 태풍도 그때의 재판이다. 아무리 산업이 발달해도 태풍 앞엔 그것들이 늘 새 발의 피라는 사실을 재삼 실감하는 것도 그때와 똑 같다. 다만 태풍 '사라' 때의 재판이 돼선 절대 안 될 일이 하나 있다. 그때도 태풍이야 불건 말건 정치인들은 이듬해 선거를 향해 이전투구를 했고 결국은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말았다.
 솔직히 내년 총선을 향한 여야의 일편단심 속마음은 그때처럼 '태풍이야 불건 말건'일 게 뻔하다. 그러나 그건 위험천만한 구태 재연이다. 또 컨테이너 신세를 저야 할 이들이나, 파여나간 논이 또 파여나간 논 주인들 가운데는 이젠 정말 봇짐을 쌀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걸 놓고 정부가 국민을 잊어버리기 전에 국민이 먼저 정부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젠 연휴도 끝났으니 유치한 싸움은 그만두고 수해지로 달려가라는 것이다. '사라'와 '매미'는 닮은꼴이지만 정치는 그때와 지금이 닮지 않았다는 모습을 보여 줄 기회다.
함광복 논설위원 hamlit@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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