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 식 논설위원

 "두묘녹작해오독(豆苗鹿雀解烏毒) / 애엽작함탈연소(艾葉雀銜奪燕巢) / 조수불증간본초(鳥獸不曾看木草) / 보지약성시수교(譜知藥性是誰敎)" "사슴은 콩의 싹을 먹어 오두(烏頭)의 독을 해독하고 / 참새들은 쑥 잎 냄새로 제비 둥지를 빼앗는다 / 새와 짐승들은 약초를 본 적이 없음에도 / 약의 성질을 아나니, 누가 가르쳐 주었는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다. '천오(川烏)를 묻힌 독화살을 맞은 사슴은 콩의 싹을 먹어 해독하고, 참새는 제비가 쑥 냄새를 싫어함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다. 동물들이 약초의 효능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니 새삼 놀랍다.
 요즘 제철을 만난 송이를 말함에 약초 얘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찾아봐도 요리 책에 송이를 재료로 한 음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선정례(貢膳定例)' '진찬의궤(進饌儀軌)' '진연의궤(進宴儀軌)' '경국대전(經國大典)' '왕조실록(王朝實錄)' 그리고 '궁중음식발기'등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우리의 음식 문화가 이들 책에 등장하는 궁중 음식에서 훌륭히 다듬어졌음을 느끼게 됐지만, 예의 송이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다. 숙회 골동반(비빔밥) 화양적 등엔 표고버섯이 주로 사용됐고, 두부선 구절판 어채 등엔 석이버섯이 넣어졌다. 아예 석이단자란 요리도 보였다. 그렇다면 '일 능이, 이 표고, 삼 송이'라는 말은 헛말인가? 궁중에선 송이나 능이 따위는 먹지 않았단 말인가?
 이런 의문은 '삼국사기'에서 풀렸다. 버섯에 관한 이야기를 최초로 기록한 문헌이 '삼국사기'인데, 여기 선덕여왕 3년 조에 "송이를 진상품으로 올리다"란 기록이 나온다. 궁중에서 일찍부터 송이를 먹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조선 광해군 때 허준이 '동의보감'에 버섯 이용법을 적는 중에 "송이는 주로 약으로 쓰인다" 했고, 인조 때 사람 홍만종의 '산림경제'엔 말려서 달여 먹으면 편도선에 특효가 있다고 해놓았다. 이로 보면 동물처럼 사람들 역시 요리보다 먼저 약으로 송이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의 외생균이요 근균인 송이, 저칼로리 고단백질 식품,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성인병 예방에 좋고, 비타민 B1 B2는 물론 말린 송이는 비타민 D 덩어리라 할 정도로 영양이 뛰어날 뿐 아니라, 위암과 직장암의 발생을 억제하는 항암 물질이 표고버섯보다 많다는 따위의 주장은 동물과 옛 사람들이 그야말로 동물적 직관으로 이미 잘 알고 있던, 그 훨씬 훗날의 얘기가 아니던가.
 지난 2000년 이 같은 송이 이미지에 이데올로기란 외피가 하나 더 씌워졌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이 판문점을 지나 육로로 과감히 남행했을 때다. 서울에 도착한 인민군 총정치국 부총국장인 박재경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 각계 인사 300 명에게 보낸 '칠보산 송이'를 전달했었다. 그 무렵 "나도 한 '송이' 먹어볼 인물인데" 하고 침흘린 인사가 적지 않았었다. 그야말로 느닷없이 송이는 남북화해의 새로운 상징어로 등장했던 것이다.
 3 년이 지난 오늘 이 가을, 송이를 생각할 때 갖가지 감정 감회를 투영해 다시 한번 '칠보산 송이'의 의미를 곱씹어 본 사람들이 없지 않으렷다. 그러나 국내산 송이의 80%를 차지하는 양양에서 송이축제가 벌어진 요 며칠 동안, 맛 향 모양이 매혹적인 송이와 함께 유감스럽게도 화해의 상징으로 송이를 보낸 그 북한의 심층부와 수십 년 동안 내연의 관계를 맺어온 송두율 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니다"는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지금 보수 우파는 분노에, 그에게 분홍빛 사랑을 보냈던 좌파는 정체성 고민에 휩싸이고 말았다. 송두율 씨에 대한 당국의 심층 조사가 '좌파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를 곰곰이 따져보는 진보론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주의적 낭만주의와 보수적 신자유주의의 혼재, 전도, 뒤섞임의 마지막 한 표징이다. 또는 제비 둥지를 빼앗으려던 참새 혹은 해독하려던 사슴인 '송두율'과 '송두율 사건'은 역사에 대한 항암 작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상식의 콘센서스는 지금 이 시간 어쩔 수 없이 막막한 슬픔 속에서 '송두율'이 마치 한물 간 퍼드러진 송이 같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광 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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