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위원>

 재작년에 그 유명한 도올 김용옥(金容沃) 선생께서 '논어 이야기'를 녹화할 때 한 노인이 앞자리에 앉아 여러 차례 기침을 했것다. 몇 번 참다가 도올 선생께서 마침내 한 말씀했다. "방송 전에 앞자리에 앉지 말라 했는데 왜 또 앉았습니까?!" 김용옥의 신경질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노인이 소송을 내자 도올은 노인을 세 차례 찾아가 깊이 사과하여 결국 두 사람은 화해를 했고, 얼마 뒤 소를 취하한 노인이 여전히 방청석에 나와 앉아 도올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더라 한다.
 이 '기침 사건'으로 김용옥은 자신의 이미지에 다소 손상을 입었지만 진실로 사과를 한 이후 오히려 성가를 높였다는 말도 전해진다. 얘기인즉 그가 공자 선생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논어'에 기록됐으되 "과즉불탄개(過則不憚改)라아-." "잘못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는 뜻이다. 잘못을 알고 사과하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풍토가 중요하며, 잘못을 잘 고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경직된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공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훈 도의회 의장의 '배드민턴 사건'을 바라보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은 우선 이 의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이 의장이 시간을 지체 않고 진실로 사과하는 뜻을 보인 것엔 대체로 긍정하는 것 같다. 특히 이 의장이 사퇴의 의사를 밝히고 또 과년한 여식이 한 시민단체에 보낸 사과의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아버지의 실수를 딸이 사과하니 아버지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세요"란 편지를 받아본 시민단체에서 즉각 사퇴 운동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장면이다. 정녕 우리 사회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지 않는가.
 이 순간 필자의 머리는 몇 가지 효의 예를 떠올린다. 고려 고종 때 강릉 사람 김천(金遷)은 몽고병에게 어머니가 잡혀간 뒤 3 년 상을 치렀는데 어머니가 요양(遼陽)에 살아 계시다는 말을 듣자 천리 길을 떠나 백금을 주고 어머니를 모셔왔다. 굳이 강릉의 예를 들 것 있나. 김해의 김극일(金克一)은 어머니의 종기를 빨고 아버지의 곱똥을 맛보았다. 창성의 김을시(金乙時)는 병을 앓는 아버지가 불을 피하지 못하자 화염 중에 뛰어들어 아버지를 업고 나오다가 부자가 다 불에 타 죽는 비극을 맞고 말았다. 창원의 김효량(金孝良)이 15 세에 아버지가 악질에 걸리자 손가락을 끊어 바치니 곧 나았다 한다.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옛 일화들을 왜 굳이 거론하는가? 예의 민간단체가 올곧게 살아온 이 의장의 지난 역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여식의 정성 어린 편지를 읽은 뒤 "이런 딸을 둔 가장이면 충분히 어제의 실수를 뉘우칠 수 있다"고 판단해 사퇴 운동을 전격 철회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효를 삶의 최고의 가치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다행스럽고 행복하고 즐거운 명 장면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의 사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그의 사과는 '실례'니 '유감'이니 '미안'이니 하는 외교적 수사나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통렬한 자성 이후의 '사과(謝過·apology)'라 믿는다. 그의 "사과한다"엔 '부끄러움(참괴·慙愧·I feel so shame)'이 담겨 있음이 분명할 터다. 따라서 사퇴로서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기꺼이 받아들여 도의회 의장으로서의 맡은 바 막중한 책무를 더욱 열심히 수행토록 해야 한다. 이를 굳이 온정주의라며 비난할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지역개발학자 존 프리드만의 "지역 발전은 인재(人材)의 집적에 비례하고, 인재를 밀어내거나 과소 평가하는 지역일수록 그 지역은 쇠퇴한다"는 주장을 떠올릴 때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연구·기자 활동을 하고 있다. 예의 '기침 사건'은 그에게 큰 가르침이 됐다. 강원도의 인재 이훈 의장의 뜻하지 않은 과오와 이 시련 역시 의장 직분에 열중하다 생긴 일종의 제의(祭儀)로 스스로에게 많은 교훈이 됐을 것이다. 사퇴는 지나치다. 이제 모두의 이해와 관용과 화해가 필요하다.  이광식 논설위원 misa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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