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영월 폐재댐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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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읍번영회 정재목 부회장(오른쪽)과 임영규 사무국장이 800만t의 신폐재댐을 찾아 붕괴 우려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허구한 날 떠들면 뭐하는 거여? 말짱 도루묵이지, 정부가 바뀌면 뭐해? 무슨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할 꺼 아니여……"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에서 김옥순할머니(66)와 외롭게 살아 가고 있는 조대연옹(70)의 집은 중석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인 폐광미(廢鑛尾)를 거대한 댐처럼 쌓아 놓은 구폐재댐 바로 옆에 있다.
 조옹은 폐광미의 피해 실태를 묻는 질문에 거센 불만부터 쏟아 놓는다. "최근 수년 동안 수 차례에 걸쳐 언론에서는 피해 상황을 알리고 정부와 관련 기관에서는 대책 마련을 위해 실태 조사를 하는 등 난리 법석을 떨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넘어 거의 체념에 가까워진 조옹의 뼈아픈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0여년째 현재 집에서 살고 있는 조옹의 바로 옆에 거대한 산처럼 웅크리고 서 있는 구폐재댐의 규모는 2만7천여평 면적에다 길이 590m 높이 38m. 지난 74년에 건설돼 81년까지 무려 400만톤의 폐광미가 쌓여져 있다.
 또 구폐재댐 바로 앞에 있는 천평리 고무라골 골짜기 9만5천여평에는 높이 98m의 신폐재댐이 자그만치 800만톤의 폐광미를 위태롭게 떠 안고 있다.


 이들 폐광미는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미세한 분진, 특히 봄 건기철 강풍이 불면 희뿌연 분진이 상동읍 내덕리와 천평리 등의 마을과 계곡 전체를 휘덮는다.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호흡 곤란에다 창문은커녕 장독대 조차도 제대로 열어 놓지 못하고 세탁물 역시 마음대로 빨랫줄에 걸지 못하는 등의 극심한 생활 불편을 겪고 있다.
 또한 고추와 배추 옥수수 콩 등의 밭농사에 주로 의존해 사는 주민들은 수확 농산물의 상품 가치마저 떨어져 제값 받기가 어려운 등 이중 삼중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11월 모방송사가 환경프로그램을 통해 폐광미 대부분이 납과 비소 등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어 주민들의 인체 내 중금속 축적도가 일반인들의 두배에 가깝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확산되어 왔다.
 주민들은“폐재댐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시한 폭탄이나 다름 없다”며“하루빨리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환경 오염을 줄이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정부측에 피해 보상과 함께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급기야 상동읍번영회(회장 황건국)등은 이듬해인 지난 해 1월 정부와 도·영월군을 상대로 폐재댐에 대한 항구적인 해결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며 생존권 확보 차원의 강력 투쟁을 선언하기도 했으며 2월에는 정부 관련 부처에 건의문을 보내 "지난 60~70년대 대한중석이 중석을 추출하고 남은 폐광미 1천200만톤을 그대로 쌓아 놓아 현재까지 붕괴 위험과 분진 피해가 극심하다"고 호소했으나 현재까지 땜질식 복구 작업만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붕괴 위험이 상존하다는 것. 주민들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78년 폐재댐 일부가 터져 가옥과 전답이 모두 묻혀 버렸으며 95년에도 폭우에 따른 폐광미 유실로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또 지난 해 여름 태풍 루사 때문에 노후된 댐의 배수로와 비탈면이 일부 손상돼 댐 전체의 연쇄적인 붕괴 우려 현상이 발생, 주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정부의 땜질처방 보다는 국책 사업으로 선정, 댐을 없애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위험 지구 주민들의 집단 이주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부나 영월군의 대책은 무책임할 정도. 지난 94년부터 2001년까지 28억여원을 쏟아 부으면서 추진한 광해방지 사업은 댐의 붕괴와 유실 대책으로 경사면 보수와 배수로 정비, 분진 피해 예방 차원에서의 댐 상층부 복토 등이 고작이다. 폐광미 자체 해결이 아닌, 댐 표면상에 나타나는 문제만 그때 그때 해결하는 땜질식 처방만이 매년 되풀이된 셈이다.

 한 때 산업자원부와 영월군은 지난 2001년 폐광미를 재활용할 경우 부가가치가 높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보조금 지원 등을 통한 벽돌과 기와 생산 원료 등의 재활용 기업 유치에 나서 이듬해인 2002년 4월 재활용 공장 신축 등의 사업 설명회를 갖는 등의 노력을 전개했다.
 영월군은 주민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겨 주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
 올해 들어 영월군은 지난 2월 한국건설안전기술원에 구폐재댐에 대한 안전진단 용역을 의뢰, 댐의 현 상태 및 집중 강우나 지진 등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안전도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댐의 안전성 판단과 효과적인 관리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옹벽 배면에의 공동 발생 및 세굴 진행 차단과 경사면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돼 현재 산자부에 31억원의 사업비 지원을 요청, 확보될 경우 이전 같은 복구 사업을 되풀이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또 지난 해 5월부터 800만톤의 신폐재댐 관리주체가 된 산림청은 현재 댐 안전 진단 용역 의뢰를 준비하고있다.
 그 결과에 따라 내년에 20억여원을 들여 산림형질복구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항구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의 입장과는 역시 상반된 정책이다.
 상동읍번영회 황건국회장(55)은“최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혐오시설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는 정책에 비해 상동읍 주민들이 지난 30여년간 폐재를 끌어 안고 살아온 고통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영월군 관계자는 “현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속적인 광해 방지사업을 펼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되지 않는다”고 인정하며“앞으로 폐재 재활용 방안 마련 등 주민들의 요구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월/방기준 kjbang@kado.net


기사입력일 : 2003-08-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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