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헌 본보 영북본부장

 어릴적 기억을 더듬으며 고향 가는 그 길을 잊지 못하고 있는 시인은 세월의 끝자락을 붙들고 안타까워했다.
 "하얀 눈이 꽁꽁 얼은 것처럼 내 마음속도 두툼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그 고향땅 양지바른 산 산까치 울어대고/ 눈감아도 갈수 있는 그길 눈에 들어옵니다/ 세월의 흔적 서리 얹힌 형제들의 주름꽃핀 그 환한 얼굴들이 가슴에 피어납니다/ 점점 멀어지는 고향길/ 세월의 끝은 보이는데/ 만남으로 세상의 정 더욱 잡아야 할 것을…."
 얼마 전 이산의 아픔을 달래며 쓸쓸한 여생을 보내던 팔순 가까운 노인이 투신자살했다. 이제나 저제나 지척에 두고 온 아련한 형제들을 만날 수 있길 고대하며 자치단체에서 지급해주는 생활보조비를 십수 년째 아껴 모으며 고향갈 채비를 해온 실향 1세대다.
 노인은 죽으면서 250리길밖에 안되는 그 땅에 자력으로 갈 수 없음을 한탄했다. 그래서 자신의 유골을 태워 뼛가루라도 고향땅에 갈수 있게 해달라는 가슴 아픈 당부를 잊지 않았다.
 유언대로 유난히 추운 날 흰 포말이 부서지는 검푸른 동해바다에 그의 유골이 뿌려졌다. 노인의 소망대로 무사히 고향인 북고성 고저항에 당도하길 빌면서.
 속초에는 노인과 같은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다. 함경도 아바이마을로 널리 알려진 청호동은 한때 7천여명의 실향민들이 고향갈 그날을 기다리며 정착했다.
 휴전 직후 군정(軍政)이 시작되면서 청호동 백사장 공터에는 판자로 방한칸 부엌한칸 그렇게 꾸민 엉성한 헛간 같은 집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그들은 나룻배로 새벽같이 잡아온 생선을 시장에 내다팔아 연명하는 고달픈 삶을 이어갔으나 곧 고향에 갈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동명항 어귀에 북을 향해 힘찬 발길을 내닫고 있는 모자상(母子像)을 건립하고 수복탑이라 부르며 시름을 달랬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그들은 희망을 단념하고 각지로 흩어졌다. 누가 그곳에 살지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곧 열릴 것이라 기대했던 분단의 벽이 너무 견고함을 알아차린 그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지금은 실향 1세대라 불리는 노인과 같은 사람들이 400여명에 불과하다. 속초지역 변두리 야산에는 그들의 한이 서린 무덤들이 고향마을 이름 단위로 옹기종기 들어서 군락을 이룬지 오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대신해 고향갈 그날을 기다리고 있으나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애만 끓이고 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후 8차례에 이르는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날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설렘과 기대로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들 가슴가슴 마다에는 벌써 고향의 그리운 얼굴들이 다정다감하게 다가와 있었다. 그러나 그 설렘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가족상봉이라는 꿈같은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먼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정녕 살아서 고향의 산하를 볼수 있을까. 이제는 모두 세월의 흔적을 안고 사는 그리운 형제를 만날 수 있을까.
 노인을 보내며 아직 청호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실향 1세대들은 오늘도 밤잠을 설치고 있음이 틀림없을게다.
 속앓이처럼 응어리진 이들의 고통은 시급히 풀어줘야 한다. 앞으로 수년내에도 그들이 건강하게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극소수의 선별적 이산상봉으로는 안된다.
 최소한 자유의사에 의해 언제고 만날 수 있는 시간에 만날 수 있는 장소만이라도 마련돼야 한다.
 현재 금강산 육로관광과 더불어 추진되고 있는 금강산면회소와 같은 장소를 남쪽의 중·서·동부지역에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정치인들은 작금의 추태를 더이상 보이지 말고 이들의 아픔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들에겐 시간이 없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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