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헌 본보 영북본부장

 참묘한 징크스도 다 있다. 영북지역의 산불은 4년주기로, 그것도 선거가 있는 해에 발생하니 굿판이라도 벌여야 할 모양이다. 추하고 어지러운 요즘의 정치 풍토속에 막가는 총선정국이고 보니 재해마저 그 소용돌이를 타고 기승을 부리는 듯싶다.
 10일 속초시 노학동 변전소 인근에서 발화한 산불이 초속 20m가 넘는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청대산 기슭 6개 마을을 덮쳐 48채의 가옥을 집어 삼키고 117명의 이재민을 냈다. 다행히 불길은 7시간여만에 잡혔지만 졸지에 집을 잃고 마을회관과 친척집에서 당시의 악몽을 되씹으며 밤을 새운 이들은 당장 피곤한 몸을 편히 누울 집 마련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산기슭을 따라 일군 텃밭 같은 농토가 전부인 영세농들이라 특단의 지원대책이 없는 한 다시 집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내린 폭설로 인해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된 남부지방은 발 빠른 복구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에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속초 산불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 듯 하다. 이재민수가 5천명을 넘어야하고 재산 피해액이 200억원을 넘어야 특별재해지역으로 선정될 수 있다는 단순한 수치상의 규모에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번에야 알았지만 산불의 경우 자연재해로 보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것은 자연 발생적인 폭설 폭우와는 달리 발화의 원인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 원인에 따라 복구지원 및 보상규모가 달라진다고 한다.
 경찰은 이번 산불의 원인을 강풍으로 인해 변전소의 고압선이 끊어지며 일어난 방전에 의한 스파크 불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력 속초지점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뛰고 있다. 한전은 한전나름대로 그 증거를 내놓고 있다. 자칫하면 원인 불명의 산불로 규정돼 보상의 주체마저 가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만일 이번 산불이 자연재해라면 가구당 가옥복구비 3천만원이 지원될 수 있으나 기대할 수 없다(200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된 고성산불의 경우 25평 기준으로 5천만원의 복구비가 지원됐으며, 96년엔 보상주체인 국방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84억원의 보상판결을 받았음), 원인 미상일 경우엔 중앙재해대책본부 등 해당 자치단체에서 지원 융자 자부담의 비율을 결정해 보상이 이뤄진다. 그러나 모든 지원이 그렇듯 자부담의 비율이 영세가구에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비롯, 허름한 헛간 같은 집이라 해도 당장 들어가는 목돈이 없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자부담이란 목돈과 융자금 상환이란 부담을 생각하면 오히려 헛간같은 집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번 속초산불의 원인을 철저하게 밝혀내 그 보상 주체를 명백히 가려내야 한다. 이와 함께 강원도와 속초시 등 관계기관에서도 조속한 복구와 보상책을 별도로 세워야할 것이다. 한편으로 특별재해지역 지정도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수치상 피해규모로는 말이 안되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모든 법은 상황에 따라 예외규정을 두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예외 조항에서 규정한 ⅓특별재해지역으로 인정되는 지역⅓이 바로 속초산불 지역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재해에서 그러했듯 이재민들이 한여름과 한겨울을 컨테이너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대로 일상으로의 복귀가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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