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위원

 지난 해 10월부터 '강원의 육담'이란 성 담론(性談論) 기획물을 연재해 오고 있다. 연재하면서 독자와 함께 즐거움을 맛보리라 믿었고, 실제로 적지 않은 호응이 있었다. 강원도에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그동안 어디서 돌아다니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들, 신문에 이런 글이 나와도 좋은가 하며 놀라시는 분들, 그리고 가장 많은 반응은 재미있다, 책으로 펴낼 만하지 않은가, 하는 제안이었다. 필자로선 그저 강호 제현이여, 즐거이 읽어 달라 할 따름이다.
 허락한다면 이 기회에 더 깊은 속내를 말해 보자. 지난 몇 개월 간 '매우 불편한 심기'로 '성'을 '담론'해 왔다. 다음과 같은 경우와 비슷하다. 소설가 홍성유가 조선일보에 '장군의 아들'을 연재할 때 몇 평론가들의 비판은 "정리할 역사가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깡패 얘기냐?"였다. 이런 질타를 받았을 때의 홍성유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다. 특히 탄핵 정국이 몰아치면서 사회 분위기와의 괴리감이 더욱 옥죄어 올 때.
 그러나 사실은 '성 담론'만 써 온 것이 아니다. 거의 매일 분권(分權)을 논했고, 예의 탄핵을 주시했으며, 계속하여 경제를 염려하면서 최근엔 고속철을 특히 고민하고 있다. 성만 파고 든 것이 아니며, 육담을 추적하면서도 변화에 민감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을. 4월 1일이면 대한민국에 사상 최초로 고속열차가 달리게 된다. 가슴 벅찬 일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고속철은 그 날 곧바로 동(東)대구로 갈 것이며, 2010년엔 신(新)경주와 울산을 거쳐 부산에 도착할 것이다. 2011년이면 영·호남 내륙 거의 전 지역에 고속열차가 굉음을 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물류 체계는 마침내 완성 단계에 이르게 된다.
 부산역에 붙어 있는 "고속철도! 꿈이 이루어진다"를 보았을 때, 가슴에 뭔가 쿵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플래카드 너머로 고속철 부산역이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냥갑만 하던 옛 건물은 사라지고 거대한 배 모양의 아름다운 부산역이 막 출항하고 있었다. 한 해 200만 명의 관광객을, 아니 이에 20%나 더 늘어난 관광객을 부산으로 불러모을 부산역이. 국제 크루즈, 연안여객선, 국내외 항공망, 고속도로 그리고 마침내 고속철을 이용해 내륙을 묶는 다양한 관광상품이 꽃비 내리듯 쏟아질 그 역사(驛舍)가, 그 역사(歷史)가.
 이런 현상이 어찌 부산뿐일 테냐. 전주에서 순천으로 고속철이 뚫리면, 순천서 목포까지 전철화가 되면 서부간선망이 연결된 대량 장거리 수송 지대인 호남 내륙과 서해안 일대에 물류가 쏠리게 된다. 이 경우 대전의 연담화(conurbation) 고민은 엄살이다. 결국 철도 중심으로 바뀌는 물류 시스템 아래 부산과 서울로 이어지는 선분, 그 서쪽 역이 밤 하늘 불꽃처럼 화려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 동쪽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잠겨갈 따름이고.
 그러므로 고속철이 개통되는 4월이 오면, 그런 4월이 오면 강원도는 '여전히' 변방이다. 지난 수 백년 동안 그러했듯.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가 있어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듯. 강원도는 '아직' 변방이다. 우리는 '오히려' 변방이다. 21 세기에 강원도는 아아, '더욱' 변방이다. 변두리 강원도의 안타깝고 답답한 이 상실, 이 지체(遲滯).
 성을 담론하다가 생긴 약간의 불편한 심기에 더해 고속철 때문에 일어난 최근의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 기공식은 결코 완화시켜 주지 못했다. '춘천 가는 길'까지 5 년이 걸릴 예정인 이 고속도로가, 태백산맥을 뚫고 양양에 안착하는 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 고속도로가. 그 초라한 기공식까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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