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 영동본부 취재부장

 "후보는 중앙의 이른바 스타 정치인 밖에 없어요."
 투표일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인지, 스타 정치인들의 바람을 평가하는 선거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선거현장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방살리기 3대 특별법이 제정된 가운데 치러지는 첫 선거인 만큼 지역 현안이나 인물, 자질을 놓고 치열한 설전을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중앙의 힘'에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탄핵풍', '노(老)풍' 등 소위 바람이라는 것이 한번씩 휩쓸고 지나갈때마다 표밭이 요동을 쳐 각지의 지역구 후보 지지율이 희비 쌍곡선을 그리는 '전국 선거'가 온통 선거전을 압도하고 있다.
 이때문에 무소속이나 군소 정당 후보는 지금 강릉시내 옥천동 5거리에서 한 후보가 연출하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 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지 않으면 좀체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정당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오뉴월 염천을 방불케하는 뙤약볕 아래 아파트 상가 등에서 아무리 목이 터져라 주장을 펴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북적대는 거리유세 풍경도 찾아보기 어렵다.
 동 트기 전부터 자정께까지 하루종일 발품을 팔고, 아이디어에 골몰하는 '무박(無泊)' 강행군을 해도 당을 대표하는 스타 정치인이 단 몇분이라도 훑고 지나가는 것이 훨씬 파괴력이 있다.
 지난 5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대관령을 넘어왔을 때는 영동 곳곳에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는 유권자들이 유세 현장으로 운집, 스타 정치인들의 힘을 절감케했다.
 한껏 주가가 올라 유명세를 타고있는 정치인, 내가 좋아하는 인사가 왔는데 손이라도 잡아보고 가까이서 눈 맞춤이라도 해 보려는 선남선녀들의 소박한 마음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런 바람의 와중에서 정작 주인공인 지역구 후보들이 조연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후보간 공방에서도 '탄핵풍', '노(老)풍' 등 바람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역현안과 관련해서는 강릉∼원주 철도부설과 강릉역 이설 국비 확보, 경포도립공원 발전 구상, 과학산업단지 활성화 등 이미 어느정도 답이 나와있는 현안을 중심으로 방법 각론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뿐 총론에서는 마치 후보들이 사전에 입을 맞춘 듯 큰 차이가 없다.
 가정에 배달되는 홍보물에 실린 공약도 '단골 공약'이 태반이어서 선택 가늠자가 되기에는 미흡하다.
 논쟁거리가 된 것을 찾는다면 아마 동계올림픽 논란 정도일 것이다. 강릉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강릉이 진원지가 아니니까 강릉 후보들은 대리 논쟁을 벌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공약 소재를 가지고 일부에서 뭇매를 맞더라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NO', 해야할 것은 'YES'라고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우는 것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앙에서 누가 오면 판세를 결정지을까. 큰바람 불었으니 이제 곧 우수수 표 떨어지겠지" 하는 기대가 지배하는 선거전에서 지역 이슈는 바람앞에 등불이나 마찬가지다.
 토론회가 크게 강화되면서 지역 현안과 공약, 인물 검증 논제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시민단체의 정책비교, 선관위의 후보자 진단 등이 지방의 버팀목이 돼 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봄의 불청객 황사 바람처럼 대관령을 넘어온 각종 '풍(風)'들이 큰길을 막고 서 있으니 현안과 공약 검증은 후보들에게는 샛길로 빠지면 되는 사안처럼 큰 부담이 되지도 않는 것 같다.
 선거가 조용해 졌다고 흡족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앙의 바람', 더 커진 철옹성의 힘 앞에 지방분권시대 '지방의 고민'이 엑스트라로 전락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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