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논설위원

 중국에 다녀온 뒤라 중국 소식에 민감해진다. 역시 중국은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의 산실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늘 관심의 적이었지만, 특히 최근 중국이 권력 투쟁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눈에 들어온다.

남자 호칭 '시엔성(先生)'

 권력 투쟁 얘기를 하기 전에 호칭 얘기를 먼저 해 보자. '통즈(同志·동지)'는 문화대혁명을 겪은 50대의 중국 사람들에게 주로 쓰이지만, 산둥(山東·산동) 지역 사람들은 우리 조폭들이 쓰는 '형님'과 비슷한 '따거(大哥·대가)'란 호칭을 즐긴다. 중국 여행 일행 중에 조씨가 있었는데, 그와 친해진 중국인이 조씨를 보고 "조따거, 조따거"라 자주 불러 우리를 웃겼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호칭으로 남자에겐 '시엔성(先生·선생)'이, 여성에겐 '샤오지에(小姐·소저)'가 사용되고, 음식점이나 상점 주인에겐 주로 '라오반(老板·노판)'을 쓴다. 옛날엔 사장을 "장꾸이더(掌柩的·장구적)"라 했고, 우리가 중국집을 "짱께집"이라 부른 것은 이 '장꾸이더'의 변형이다. 사라진 이 말 대신 지금은 기업체 사장을 '라오반'이라 부른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요즘 이 '라오반'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산시(山西·산서) 지방에 가자, 시꺼먼 석탄광이 많이 보였다. 여기 석탄광 '사장'들 역시 문제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개발 중국'에 2년 전부터 석탄 값이 폭등해 '라오반'들이 폭리를 취했음에도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하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가 심해진 것은 물론 특히 성공한 '라오반'들의 모럴 해저드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에 터진 '인민빌딩 사건' '더룽그룹 사건' '저우정이 사건' 등은 모두 이 '라오반'과 공무원과 은행의 결탁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부정부패 사건이었다.
 한 마디로 최근 중국은 졸부 '라오반'들의 도덕적 해이로 신열을 앓고 있다. 이게 권력 투쟁과 어떻게 연관되느냐고? 얘긴즉 이렇다. 지난 해 중국을 뒤흔든, 상하이 부동산 개발의 큰손 '저우정이(周正毅·주정의)'가 일으킨 사건에 중국 중앙군사위 주석인 장쩌민(江澤民·강택민) 계열에 속한 소위 '상하이방(上海幇·상해방)'의 상당수 고위 인사들이 연루됐다. 이 때문에 성공한 '라오반'들인 '상하이방'이 후진타오(湖錦濤·호금도) 국가 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를 비롯한 중앙의 신흥 권력층과 해외 인사들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샀다.
 얼마 전 장쩌민 계열의 상하이 당서기 천량위(陳良宇·진량우)가 후진타오 계열의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의 '경기 과열 진정 대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는데, 이게 바로 상하이방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다. 장쩌민이 며칠 전에 "중앙군사위 주석 사퇴"를 표명한 것은 말하자면, 상하이방의 도덕적 해이 등에 실망한 군 수뇌부가 장쩌민 주석에서 후진타오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중국은 지금 상하이방을 중심으로 한 구(舊)세력 장쩌민과 신흥 엘리트 정치 세력 후진타오 사이에 권력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졸부'라오반'들 도덕적 해이

 그렇다면 이게 또 우리 고구려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를 알려면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존 태식 연구원의 말을 빌려야 한다. 존은 홍콩 인터넷 신문 '아시아 타임스'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왜곡의 이유는 후진타오 주석의 온건파와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이 이끄는 강경파 상하이방 간의 권력 다툼 때문이다." 즉, 부패한 상하이방을 등에 업은 옛 권력 강경파 장쩌민이 실각하면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의외로 간단히 풀릴 수도 있다는 시사다.
 고구려사에 대한 논리적 대응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중국 권력층의 갈등을, 그 갈등의 내밀한 과정을 예의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7 세기 동아시아 패권을 거머쥔 수(隋)와 당(唐)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침략에 유연하게 대처 못한 고구려의 과거사를 참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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