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4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교환했지만 합의문을 발표하지 않아 사실상 여야 영수회담을 통한 '상생의 정치' 및 '큰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냉랭한 분위기로 시작된 여야 총재 간 이번 회담에서 정국 현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국내 정가는 신년 벽두부터 날씨처럼 차가운 냉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이런 분위기는 경제난에 처한 신년 '한국호'의 항진이 순조롭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먼저 일차적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하려 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는 영수회담을 해서 무엇하느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 영수회담은 대화와 협력의 큰 정치 구현이라는 기본 전제 아래 여당이 이에 충실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은 채 민주당 의원 3 명의 이적(移籍) 문제와 관련해 불가피성을 강조했을 뿐이고, 이총재 역시 총선민의에 어긋난다며 원상복구를 요구함으로써 결론 없는 회담을 만들었을 뿐이다. 만남으로써 오히려 더욱 나빠진 회담에 국민들은 실망할 게 뻔하다.

아울러 '안기부 총선자금' 등 꼬인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을 머리를 맞대고 찾으려 하기보다는 책임을 떠넘기는데 급급했다. 김대통령은 지난 해 4·24 영수회담에서의 국정 현안 협력 약속을 야당이 지키지 않았다 주장했으며, 이총재는 인위적 정계 개편과 개헌론, '야당탄압'을 주장하며 여당의 책임을 물었다. 대화란 주고 받아야만 바람직한 결론을 얻는 것인데, 이런 식의 자기 주장이라면 결국 신년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이나 명분쌓기일 뿐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경제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열린 이번 영수회담은 따라서 국민을 크게 실망시킨 정치적 오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여야간 신뢰가 실종되고 협력 상생 대타협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런 상태로 향후 정치와 국정이 어떻게 운영될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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