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설 연휴 민심잡기 전략을 세우고 당직자들을 모아 이미 작전지시를 내린 모양이다. 설날 고향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조상에 차례지내고 어른들께 세배하며 정을 나누고 나면 자연히 화제가 세상 돌아가는 켯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그런 자리에서 나올 얘기가 정치하는 사람들 도마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거나 술상 위에 세워 돌아가며 씹어대는 내용일 것이라는 짐작에서 이참에 상대당을 깔아뭉개고 우리 당이 잘하고 있다는 말을 퍼뜨리자는 전략이리라. 민족의 아름다운 명절 설날 연휴까지 지긋지긋한 정치싸움의 시간 공간으로 삼아 휴전은 커녕 독전(督戰)의 칼을 빼드는 형국이니 그 호전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설 연휴 정치권의 공방 비방전은 최상층부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벌써 시작된 상황이다. 엊그제 대전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김대중 신독재 장기집권 음모 분쇄 규탄대회'에서 이회창총재는 자민련을 겨냥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자민련은 이제 민주당 손아귀에 들어가 민주당에 종속된 2중대"라며 포문을 열고 "총리나 장관직 몇자리 얻어 민주당을 돕고 곁방살이나 하려는 DJP공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가시 돋친 말을 퍼부었다. 같은 날 장재식의원 입당환영식이 열린 마포당사에서 김종필명예총재도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를 직접 겨냥해 쓴소리를 해댔다. "자민련은 이미 법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야당이 인정하고 안하고 할 성격이 아니다." "야당이 지나친 것 같다. 한나라당에서 누구 한사람 데려온 것도 아니고 나라를 위한 봉사의 성격으로 (장의원이) 온 것인데 남의 당 일을 그저 탓하고 비난하고 유린하려는 발상을 야당이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 서울과 대전에서 벌인 입싸움인데 마치 화상대적이라도 한듯한 공방전이다.

그날 상도동에선 김영삼전대통령이 한나라당 강삼재부총재를 불러 점심을 먹으면서 YS특유의 독설을 퍼붓고 있었다. "김대중씨는 정치 보복의 화신이며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연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이제 날씨가 풀리면 심각한 사태를 맞게 될 것이고 김대중씨는 불행하게 될 것"이라고 악담같은 예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들이 정말 우리나라 최고위 정치지도자들인지 의심이 갈만큼 막말 험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경제도 얼어 붙고 정치도 얼어붙고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은 요 며칠 사이 정치 지도자들이 얼어 붙은 민심을 더욱 차갑게 식히고 굳히는 말싸움을 벌였다.

더욱 한심한 건 정치권의 설 연휴 민심잡기 전략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당 하부조직에 시달한 지침은 한마디로 야당 깔아뭉개기다. 이른바 안풍(安風)을 부채질해 한나라당의 부도덕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안기부돈 구여당 유입사건을 정부예산 횡령 사건으로 못박고 '예산에서 나간 돈 예산으로 반납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날린다는 것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설연휴 민심잡기 전략을 세우고 게릴라전술을 펼친다는 각오다. 안풍을 야당파괴공작으로 규정하고 의원 꿔주기를 여권의 정계개편 전략으로 몰아가면서 현정권의 실정을 낱낱이 까발린다는 계획이다. 설연휴가 혼탁한 정치싸움의 시공으로 변할 게 분명하다.

제발 그만둘 일이다. 경제한파로 가뜩이나 우울하고 초라한 설날 여야가 국민들의 궁색한 삶을 켜켜이 살펴 위로할 생각은 못하고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려 하니 그 속셈이 무엇이건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전략이다. 여야가 다같이 국민 앞에 머리숙여 진솔하게 사과를 해도 이반된 민심을 추스르기 어려운 판에 중앙당 차원의 정쟁을 전국에 확산시켜 무얼하겠다는 것인가. 민심을 잘못 읽어도 그렇게 잘못 읽을 수가 있는가. 차라리 여야가 설연휴 덕담을 주고 받으며 잠시나마 맑고 따뜻한 눈길로 상대방을 녹이고 민심을 녹이는 지혜를 발휘하라.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도 그 편이 오히려 국민의 점수를 따는 전략이 될 것이다.

盧和男 논설위원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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