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첫날이던 지난 23일 세계적인 통신사인 AFP는 시민으로 돌아간 클린턴의 근황을 전세계에 타전했다. 퇴임 첫날인 21일(현지시각) 새 거주지인 뉴욕 채퍼쿼의 한 커피점 앞에서 커피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는 전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모습이었다. AP통신도 다음날 퍼스트레이디에서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신분이 바뀐 시민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청바지 차림의 남편과 같이 블루진을 입고 애견과 나란히 산책하는 사진을 지구촌에 전했다. '팩스 아메리카나'의 세계 대통령에서 일개 시민으로 돌아간 클린턴은 사진 그대로 미국 동부의 뉴욕은 물론 서부의 로스엔젤레스나 중부 덴버에서도 언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대통령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돌아가는 이같은 모습은 이젠 미국의 전통이다. 아이젠하워에게 백악관을 넘기고 총총히 재야로 사라진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의전마저도 마다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 대통령으로 미국민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다. 그가 워싱턴을 떠날 당시 그는 무일푼이었다. 경호원과 연금이 없는 것은 물론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하는 사무실과 비서도 물리쳤다. 수입이라곤 육군이 제공하는 월112달러의 연금이 전부였다. 트루먼이 백악관을 나와 고향으로 이사갈 돈이 없어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먼 훗날에야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낙향하던날 그는 전용기도 마다하고 우리의 '비둘기'나 '통일호'에 해당하는 완행 열차를 이용했다. 시민으로의 철저한 복귀였다.

지난 23일 시민 클린턴이 뉴욕의 커피점을 드나들며 애견과 산책을 즐기는 시각, AFP와 AP통신은 또다른 외신을 타전했다. 이번에는 마닐라발 필리핀 정정에 관한 뉴스였다. 제 2의 피플파워로 대통령을 축출한 필리핀에서 국방장관이 군부내 쿠데타설을 일축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필리핀 국방장관은 현지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부내의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 아로요 신임 대통령을 흔들기 위해 쿠데타를 기도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하고 "보안에 어떤 위험이 있다면 책임있는 기관이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장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외교소식통들은 필리핀의 정정이 매우 불안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일부 상원의원들과 군부내 불만 세력이 연계된 쿠데타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부패 혐의로 국민에

의해 축출된 에스트라다마저 정권교체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법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투표에서 패하고도 대통령이 된 부시나 피플 파워로 헌법에 따라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된 아로요 모두 소수정권으로 정치기반이 취약하다. 이들은 따라서 취임연설에서 모두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 2명의 신임 대통령들에게 미국과 필리핀의 전직 대통령 2명이 보여준 모습은 하늘과 땅이다. 클린턴은 부시 신임 대통령의 정권인수를 적극 도운 것은 물론 민주당의 대선 후보이자 선거에 이기고도 백악관입성이 무산된 고어를 다독이며 그가 부시의 당선을 인정하고 지리한 법정소송이 몰고올 국론분열로 인해 미국 민주주의가 입을 손상을 미연에 막도록 설득했다. 반면 부패혐의로 권좌에서 축출된 에스트라다와 그의 추종자들은 취약한 아로요 새정부를 흔들며 쿠데타설까지 유포하고 있다. 에스트라다는 나아가 대통령직 회복을 위해 오는 5월로 예정된 상하 양원선거나 차기대선에 출마, 재신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한다.

설연휴동안 권좌에서 물러난 미국과 필리핀 양국대통령의 퇴임후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의 상반된 모습만큼이나 민주주의의 질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케 했다. 그리고 2001년 신사년 새해 아침.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필리핀의 민주주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근접해 있을까를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된다.

南宮昌星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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