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산업 불모의 땅에 자동차 건설 조선 등 거대 기업을 일으켜 개발시대를 주도했던 기업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강원도 통천의 조그만 마을 아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8남매중 맏이로 태어난 그가 한국 경제의 거목으로 성장하기까지 겪은 인생 역정(歷程)은 그대로 한국 경제사의 굴곡과 맥을 같이한다. 타고난 근검과 성실, 뚝심과 배짱으로 기업을 일으키고 이끌어간 그가 우리 경제에 남긴 공과는 아직 평가가 이르다. 그러나 기업인 정주영이 남긴 교훈은 기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현대'의 창업주이자 '현대신화'의 주인공인 정회장의 일생은 '현대'의 영욕 그 자체였다.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대 재벌의 오너로서 영광의 한 시절을 보냈고 만년엔 '왕자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아들 형제들의 분란과 이로 인해 시작된 현대그룹의 급속한 와해, 일부계열 기업의 침몰을 생전에 다 겪어야 했다. 평생 쌓아올린 부와 인맥을 바탕으로 정당을 창설하고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함으로써 정치적 수모와 압박을 받기도 했다. 족벌식 황제경영이니 선단 경영이니 방만한 문어발식 기업확장이니 하는 국민적 비판에 부딛치기도 했고 실제로 그 폐해가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소떼를 몰고 반세기 분단의 벽을 넘어 북한 땅에 들어간 80대 고령의 기업인이 남북관계의 새 이정표를 세운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없는 장쾌한 사건이었다. 그 소떼가 얼어붙은 남북의 길을 열었고 금강산 뱃길을 열어 남북 화해와 교류의 시발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무리하고 조급하게 밀어붙인 금강산 관광사업이 계속되는 적자로 현대의 자금난을 부채질했고 미국에 부시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관계가 새 국면을 맞고 있어 남북 화해 교류의 앞날이 순조롭지만은 않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막힌 물꼬를 튼 기압인 정회장의 공이 그로 인해 퇴색된 것은 아니다.

강원도가 낳은 세계적 기업인 정주영 회장의 고향에 대한 애정 또한 깊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원은행 설립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창립발기인 대표를 맡았고 강원은행이 향토은행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금강장학회를 설립해 향토 인재 육성을 지원했고 아산병원을 세워 지역주민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펼치기도 했다. 지금 '현대'가 어려움에 빠졌고 이로 인해 국가 경제에도 적지않은 부담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고인이 된 도 출신 기업인 정주영회장의 업적이 지나치게 폄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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