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어린이의 그림 속엔 마을 앞 실개천이 까만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30∼40대 이상은 그런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렇다면 그들 자녀들의 그림 속엔 지금 마을 앞 실개천이 어떤 모습일까. 보나마나 깨진 플라스틱, 망가진 자전거, 부서진 가구, 비닐조각, 비료포대, 농약병 따위가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집어내면 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속으로 중병이 들어 이미 물의 기능을 잃은 농촌 실개천의 본질이 문제다. 횡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을 앞 실개천살리기운동'은 이때문에 깜짝 정신이 들게 하고 있다. 대도시의 고민거리인 줄만 알았던 생활환경오염이 어느새 농촌, 산촌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이젠 주민 스스로 환경오염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횡성의 이 운동은 우천농공단지 앞 실개천 70m에 갈대, 미나리 등을 심고, 폭기 시설을 하고 점차 읍·면에 확대하겠다는 정도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짝 행정창안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골짜기마다 가든, 모텔, 유원지, 축사이고, 산비탈까지 정비공장이나 아스콘 공장이 들어서 있는 것이라든가, 비료 농약에 중독된 우리네 농업실태를 눈여겨본다면 이 운동은 농촌환경오염 위기의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운동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전개되는지 주목하고 싶으며, 한편으로는 강원도 전 지역으로 이 운동이 확산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실개천은 지구의 실핏줄이다. 실개천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흘러들어 바다가 되며, 바닷물이 증발해 빗물이 되어 다시 실개천을 만드는 물의 순환 1차 단계가 실개천이기 때문이다. 이 실핏줄이 병 걸려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지적된 사실이다. 생물학적으로 '좋은 개천'과 '나쁜 개천'을 구별하는 방법은 먹이사슬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조류(藻類)들은 유기물을 형성하고 이 유기물을 하루살이, 날도래, 모기붙이 등 작은 동물이 섭취하고, 이를 다시 은어, 돌고기, 곤들메기 등이 잡아먹는 먹이 사슬이 형성될 때 개천은 튼튼한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실개천은 사람들의 향수 속에서나 존재하고 있다. 어느 곳이나 실개천은 이미 사천(死川)이 된지 오래다. 다가오는 수자원 고갈 위기를 대비해 도시에서는 감량화(Reduce) 재이용(Reuse) 재순환(Recycle)의 물 절약 3R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또 물을 가둬두기 위한 중소형 댐 건설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병든 물을 절약하고, 가둬둔 들 과연 물 부족현상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말로만 자연환경보호이고, 이어서는 안 된다. 횡성 실개천 살리기가 올해 도민들의 '물 좋고 산 좋은 우리고장 지키기' 운동으로 확산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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