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강원도 민속문화축전을 다녀와서

 금강산을 다녀와서 북한을 가봤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거긴 연두색 펜스 안에 갇힌 '현대 세트'다. 따라서 거긴 연습을 했거나 훈련을 받은 흔적이 역력한 잘 정제된 풍경이다. 북쪽이 많이 변했다고 속단하기 쉬운 것도 '현대 세트'에서 그 풍경만 보았기 때문이다. 금강산 호텔 데크에는 밤마다 포장마차 장이 섰다. 한화도, 카드도 안 되고 오로지 유에스 달러'현금 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본주의에 이미 발을 담고 있었다. '현대 세트'의 북한사람들은 최소한 연변 조선족만큼은 '개화'된 것 같았다. 그러나 '현대 세트'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현대 펜스 밖의 북쪽은 과거보다 더 비장한 결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옹 입을 다문 모습은 남북강원도 민속문화축전의 교류공연장에서 담박 노출됐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예술성만으로는 강원도 아리랑을 공연한 남쪽이 더 고전적인 것 같았다. 굳이 비교하라면 북쪽의 민속은 현대화돼 있었다. 현대화? 아니, 개혁해 놓은 민속이었다. '신고산 타령'은 '신고산이 우르릉 그 무슨 소린가 하면은 농장마을 처녀들 또락또로 모는 소리'가 되어있었다. 빨간 저고리에 꾀꼬리 치마를 입고 빨간 북을 치는 북춤은 경쾌하고 역동적이었다. 휘휘 늘어지는 우리 옛 춤에 익숙한 남쪽 사람들은 북춤의 '본적'이 어디냐고 수군거렸다. "아마 최승희 춤일지 몰라." 그런 소리도 들렸다. 장전해수욕장에서 열린 민속경기는 당황 스러웠다. '활쏘기'로 개칭된 국궁시합에서 날고기는 남쪽 궁사들이 '5시 무중(無中)'의 낭패를 당했다. 오래 전 국궁을 버린 북쪽에 맞게 절충식 50m과녁을 썼기 때문이다. 통일 과도기, 넘실넘실 넘어오는 남녘바람 앞에서 북쪽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그들이 만든 '개량민속'이었다.
 오징어를 낙지라고 우기는 바보가 다 있나? 그러나 특산물 전시장의 오징어는 '낙지'란 이름을 떡 달고 남쪽 사람들을 바보라고 우기고 있었다. 밥상 앞에서 또 한번 바보가 된 것은 흑돼지고기 한 점을 쌈 싸는데 5∼6장을 겹쳐야 할만큼 작디작은 상추 때문이었다. "선생은 부루를 참 좋아하는 구만요." 부루? 상추를 부루라고 부르는 것은 북한방문 12회의 베테랑도 처음 듣는다고 했다. 질경이 이파리만 할까. 그 상추가 작지만 도톰하게, 씁쓰름 하고 짙은 맛으로 북쪽 부루의 고집을 지키고 있었다.
 공동만찬에 동석했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38살 엘리트는 두 번이나 '평양 대집단체조'를 구경가라고 권했다. 남녘 동포들에게 평생 한이 될까봐 특별히 남쪽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은근한 외화벌이 속셈에도 또 한 마리 토끼를 잡을 궁리가 숨겨 있었다. 그 옛날 '3천만의 연인'이란 예명으로 이름을 날리던 문예봉의 월북 출세담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과거에 무엇을 했든, 현재에 충실하면 장군님께서 들어 쓰셨다 말이야요." 그런 비유로 남쪽의 골치 아픈 과거사 청산 회오리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맞다. 그들은 집요한 햇볕세례의 통일과도기에 안간힘을 쏟아 자신들의 것을 지키려 하는 게 틀림없었다.
 금강산 바위 글자 '주체' 등은 그 전처럼 붉은 색이 칠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벗겨졌지요." 바위글자의 탈색이유를 그렇게 말했다. 하긴 바위에 봇도랑만한 크기로 붉은 글자를 새긴들 배고픈 인민에게 무슨 효험이 있겠나. 그래서 색칠 덧입히기를 중단했을까. 그러나 그 답변을 온정리 회색 풍경이 설명하고 있었다. 현대펜스 너머론 관광객 시선 차단용 담장이 길게, 길게 집단촌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뒤편엔 필시 검댕 같은 가난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남녘햇볕에 눈 뒤집힌 폭발전야의 분노도 들끓고 있을까. 그러나 순진한 상상일지 모른다. 수확 끝난 옥수수 밭에서 낱곡을 줍더라도 눈 하나 까딱 않는 저 고자세를 8년 전 금강산 첫배가 떴을 때도 보고, 지금도 보고 있다. 그 새 온정리는 햇볕 면역력도 생겼는지 모른다.
 온정천 둑을 오른 물지게 진 여인이 막 담장 뒤로 돌아갔다.
 "개울물을 그냥 먹는 모양이지?"
 버스 안 저 소리를 누가 밖에서 들었다면 이렇게 되물었을지 모른다.
 "민족영산 맑은 물을 왜 소독약질을 해서 먹습네까?"

함광복 논설실장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