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선 복원구간이 궁예도성을 관통하도록 설계된 것을 우회개설로 검토하겠다는 철도청의 입장은 일단 크게 환영한다. 그러나 통상 공공기관이 곤란한 민원에 부딪힐 때 자리 모면용으로 쓰이는 이 '검토'란 말이 풍기는 뉘앙스와 그런 철도청의 입장 표명 뒤에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영 석연치 않다. 철도청의 '우회개설 검토' 입장 표명은 道의 철원국토중앙지대 구상에 따른 건의에 대해 간단히 그 쪽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道는 궁예도성복원과 철새도래지 보호계획을 추진하자면 경원선 복원구간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노선을 우회해 달라고 건의한 것이며, 철도청은 이에 대해 "어렵긴 하나 검토는 해보겠다"고 말한 것이다. 한마디로 우문(愚問)에 우답(愚答)한 것이다.

道는 그렇게 건의하지 말았어야 한다. 보다 역사적이고, 민족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건의를 했어야 했다. 경원선은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건설한 침략사관, 식민사관 건설공사의 대표적 표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최근 TV사극을 통해 재조명되는 것처럼, 한반도 통일과 옛 고구려 땅의 회복을 꿈꾸던 한 왕조의 궁궐터를 그렇게 무참히 짓밟으며 철도를 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는 "우리도 잘 모르는 궁예도성을 당시 일본이 알았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1940년 7월 30일자로 궁예도성지의 석등을 국보 118호로 지정한 것만 보아도 그곳이 궁궐터라는 사실은 우리만 잘 모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경원선은 앞으로 남북교류를 넘어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유라시아를 지나 지구 반대편과 연결될 역사이래 우리민족이 이렇게 큰 뜻을 담던 일이 있었을까 할만큼, 민족의 염원이 담긴 대동맥이다. 이런 뜻이 담긴 길을 역사말살의 현장인 옛 철도를 그대로 복원해 쓴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문제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다시 건설하면서까지 이 철도가 궁예도성을 관통하도록 한다면 두고두고 후손에게까지 논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건설한 동해남부선 철도가 경주 사천왕사지를 관통한다고 하여 수십 년째 논란이 되는 것 이상이어서 언젠가는 궁예도성 관통부분을 다시 놓아야 할 것이다.

道가 이 철도의 우회를 재건의 할 방침이라면, 바로 사계 문화계를 총동원해 우회개설의 당위성이 누구에게나 이해되고 공감되도록 딱 떨어지는 건의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철도청 주변의 이런저런 뒤 얘기 가운데는 DMZ 통과지점에서 135m의 표고차를 극복해야하는 등 기술적 문제를 놓고 "이것 때문에도 우회는 안 된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 철도를 한 세기 전에 놓았다. 그 한 마디로 일축하겠다.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