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돈 4조 원이 시중에 썩고 있음에도 기업들이 여전히 돈가뭄으로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정책 운영 잘못 때문이다. 지난 1993년 11월부터 실시된 금리자유화조치 이후 금리가 금융기관의 자율에 맡겨진 이래 돈은 남아 도는데 정작 기업이 유휴자금을 이용하려 해도 현실적으로 돈 구경을 할 수 없는 지금과 같은 경우란 전례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어찌하여 발생됐는가. 지난 해 1·4 분기 이후 금융시장 불안에 경기 부진이 이어지자 자금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경제 주체들이 '제로금리' 현상으로 수시입출식 저축예금 등 단기성 상품에만 자금을 맡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금융기관들 역시 이에 따라 산업대출 일반대출 등 장기간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금융시장의 이같은 왜곡 현상이 기업의 자금시장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거나 심해질 경우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경제 전반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함에도 여전히 수신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인 6%대로 진입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돈은 계속해서 단기성 상품으로 쏠리고 기업은 목이 탈 수밖에 없다. 정부 당국은 당장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예금금리를 올리고 예금이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유동성이 높은 통화성 예금보다 예금의 거치 기간이 긴 예금 상품을 새로 개발하여 투자처를 못 찾아 헤매는 유휴자금이 은행으로, 그리하여 다시 기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마땅하다.

예컨대 5 년 이상 장기저축 상품의 경우 만기 후 발생한 이자소득에 종합과세를 부가하지 않는 것 같은 세제상의 혜택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등 장기저축 장려책 및 분리과세 정책을 전면적으로 확대 실시하는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여신은 고금리로 하고 수신에서는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는 지금과 같은 왜곡된 금리 정책을 계속 진행시켜서는 민간투자를 자극하여 유효수효(有效需要)를 증대시키려는 정부의 의도는 현실화하기 어렵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여신금리를 낮추고 수신금리를 어느 정도 보장해 줘야 장기저축을 유도할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돈가뭄 본질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금리자유화조치 이래 이 문제는 정부 말고도 마땅히 금융계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 시장 논리만 내세워서는 국가경제의 침체를 조기에 벗어나기 힘들다. 동시에 금융기관은 실효금리(實效金利) 역시 낮춤으로써 기업의 부담을 줄여 주는 정책도 마련해야 금리 운영 전반에 윤기가 돌게 될 것이다. 정부 당국과 금융계의 진지한 검토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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