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단풍철을 앞두고 동해시 백봉령에서 삼척 댓재에 이르는 태백산맥 일대 수만㏊와 영월∼정선사이 국도 변 산림이 대벌레 피해로 누렇게 죽어 있던 기억을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또 그 일대 농민들은 대벌레가 콩잎을 갉아먹어 약을 뿌렸더니 산으로 올라가 산을 온통 망가뜨렸다며, “저 해충이 산에서 밭으로 내려왔는지, 밭에서 산으로 올라갔는지 알 수 없다”고 어리둥절했던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대벌레가 영동남부 백두대간에 다시 대규모로 발생해 빨리 구제하지 않으면 엄청난 산림피해가 예상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산불에서 한 숨 돌리려나 하는 순간 예기치 않았던 천재가 덮쳐 인간의 지혜를 시험하는 것 같다. 어떻게 대처할 지 숙제만 남은 것이다.

대벌레는 날개가 퇴화한 곤충으로 몸길이는 70∼100mm 정도. 색깔은 녹색, 몸과 다리는 가늘고 길며 더듬이는 짧고, 암컷의 머리에는 1쌍의 가시가 있다.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다리를 떼어버리고 달아나기도 하고, 몸과 다리를 뻗어 마치 '나뭇가지' 모양으로 변하거나 죽는시늉까지 하는 의사(擬死)습성이 있다. 이 기이한 산림해충은 매년 발생하긴 하지만 대규모로 발생할 때는 야생식물은 물론 가로수나 과수의 잎, 콩잎 팥잎도 먹어치우는 농작물 해충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산간 농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완전 박멸이야 어렵겠지만, 방제 약이 있긴 있다. 그러나 강력한 살충제를 동원할 경우, 밀원식물에도 영향을 미쳐 토종봉, 양봉도 함께 폐사 시킬 위험이 있다. 더욱이 요즘이 한창 산채 철이다. 그런 살충제가 묻은 산채가 시중에 유통될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적극적인 방제에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깊은 산 속에서 발생한 이같은 천재에 대해 어느 한 곳에서도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림해충은 2,3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곤충의 세계란 그 탁월한 번식력과 적응력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고 보면, 수많은 병해충을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해 볼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림청은 이번에 '어찌할 수 없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미 대벌레 애벌레가 백두대간 중심인 백봉령과 투타산, 삼척 댓재, 강릉 옥계까지 확 퍼져 있는데도 산림청이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실례이다. 산림청은 지난 3일 자방나방류에 대한 '산림병해충발생예보'를 가장 최근의 것으로 올 들어 5차례의 예보를 내면서도 7일 현재 대벌레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산림병해충 구제에 대한 주무부처의 인식이 그 정도라면 정말 태백산맥이 다 망가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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