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모면하려는 기발한 발상인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21일의 민주당 당직자회의에서 쏟아져 국민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백 번 양보하여 노무현(盧武鉉) 상임고문의 "당 차원의 정치적 조치가 필요하다"나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의 "당이 정치적 실수를 끊어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은 감사원의 '의약분업 실무자 징계 방침'을 집권당인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좋게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을 실패로 규정하면 큰일"이라는 조세형(趙世衡) 상임고문의 말은 감사원이 국민건강보험 재정파탄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감사를 끝내고 문책 범위와 문책 수위를 정하려는 시점에서 나온 당략적 무책임한 주장이라 그 진의를 따져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의약분업은 실패한 정책이 아니란 말인가? 현실은 실패인데 정치적 인식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지난 해 의료대란이 빚어져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음에도 의약분업을 강행해 오늘날 이같은 재정파탄 위기에 직면토록 한 것이 정책적 실패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 더 참담해져야 실패를 자인할 것인가.

당시 복지부 기획실장이 "이대로는 안 된다"며 직언했다가 목이 잘린 사실이나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돈이 더 든다"는 내부 보고서를 차흥봉(車興奉) 전 장관이 묵살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에서 어떻게 "실패로 규정하면 큰일" 운운이 당 중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지 놀랍다. 아직 정책이 진행 중이고 희망적 전망을 전제하기 때문이라면 더욱 지금까지의 실책을 철저히 따져보고 책임질 사람을 가차없이 문책하는 것이 실패의 반복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취해야 할 바른 태도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민주당은 감사원의 '의약분업 실무자 징계 방침'에 제동을 거는 발언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무현 상임고문의 말처럼 "당 차원의 정치적 조치"나 정동영 최고위원의 주장대로 "당이 정치적 실수를 끊어 줄" 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이들의 주장이 실무자를 징계함으로써 초래될 공직사회의 반발을 감안한 '징계 반대' 발언이란 해석과는 무관하다. 우리는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무자뿐 아니라 정책 판단을 잘못하여 강행 방침을 고수한 고위 공직자를 가려내 문책하는 '정치적 조치'의 필요성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여론의 지탄을 무릅쓰고 민주당 고위 당직자들이 '의약 파탄' 책임자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자는 주장을 한다면 의약파탄의 책임자는 사라지고 감사 내용에 정치성이 개입됨으로써 더욱 큰 논란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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