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시 김선봉(金善奉) 할머니가 남긴 장학금 5백만원은 부유한 독지가의 50억원 장학금보다 무겁고 따뜻하다. 평생을 혈혈단신으로 외롭고 가난하게 살아온 할머니가 풀빵장사를 해서 모은 돈이다. 나라에서 대주는 한달 20여만원의 생계보조비로 겨우 겨우 끼니를 이으면서도 꼬깃꼬깃 모아둔 500만원을 할머니는 임종에 앞서 동해시에 맡겼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 써달라"며 전재산을 내놓고 할머니는 지난 겨울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에게 500만원은 거금이었다. 그 돈이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어느정도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돈을 선뜻 장학금으로 내놓고 세상을 떠났다.

"나라 덕분에 먹고 살았으니 반드시 보답을 해야한다"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할머니는 스스로의 다짐을 아름답게 실천한 것이다. 세상에 부자가 흔하고 장학재단도 많고 자선단체도 많지만 할머니가 남긴 500만원 장학금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그 돈에 담긴 고귀한 정신 때문이다. 할머니의 장학금 500만원이 메마른 우리의 마음을 적시면서 스스로 자성의 시간을 갖게하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인색한 게 대부분 사람들의 성정이다. 내것을 덜어 남에게 나누어 주기보다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가난하기 이를데 없는 삶을 이어온 할머니가 금쪽같은 돈 500만원을 선뜻 내놓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다.

김선봉할머니의 '아름다운 빈 손'은 어떤 종교의 교리보다 맑고 큰 울림으로 우리 가슴에 훈훈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내가 가진 적은 재물로 남의 빈 손을 채워주는 따뜻한 보시요 내 가난의 고통보다 남의 가난을 더 가슴 아파하는 작지만 큰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각박하고 흉흉하지만 어느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롭고 착한 일을 소리나지 않게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직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선행은 야박한 세상에 소리없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원망과 다툼 시기와 탐욕으로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그래도 부서지지않고 이만큼 굴러가는 게 사람 사는 바른 길을 묵묵히 걸으며 희생하고 봉사하는 의롭고 착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임을 깨닫게 한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자신을 희생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실행하고 훠이훠이 저승길을 떠난 김선봉 할머니의 도타운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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