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영농으로 농민이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는 호소는 어제오늘 농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다. 여기에 가뭄영향까지 가세하고 있다면 올 농가 수지는 사상최악으로 처박히는 셈이다. 철원군 근남면 이(李)모씨는 이 달 중순까지 비가 안 오면 논 1만5천 평 가운데 3천 평의 모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제 때 모내기를 못한 데 따른 수확량 감소, 모내기 포기에 따른 수확포기를 계산하면 올 농사는 앉아서 쌀 100여 가마를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무까지 말라죽는 판에 올 밭농사, 특히 노지 재배를 하는 고추, 감자, 옥수수, 콩 따위는 거의 끝장이다. 하늘 때문에 빚어지는 이런 농가소득감소의 예상치를 '자연감소'라고 하자.

문제는 가뭄 전쟁을 치르면서 예기치 않았던 '물 값'부채가 밑 빠진 독 물 붓기로 들어가 올 영농사정은 '인공감소' 의 악재까지 겹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李)씨는 "석 달 동안 양수기 구입비, 굴삭기 임대료, 전력연결 비용 등에만 600만원이 들어갔다"고 했다. 모내기를 하기도 전에 쌀 60여 가마를 모내기 비용으로 지출한 것이며, 자연감소 예상치 쌀 100여 가마를 합하면, 그의 올 농사는 우선 쌀 160여 가마의 손해를 보고 시작하는 셈이다. 몇 사람의 경우가 아니다. 도내 모내기가 99%에 이르렀고, 6천772㏊의 밭도 관수 시설로 해갈을 하게된다고 하지만, 이미 농민들은 대부분 이 같은 비용지출에 사실상 골병이 들어 있다. 농사는 모내기를 하고, 밭에 씨가 붙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충분한 비가 와주지 않으면,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또 관정을 뚫고, 굴삭기로 개울바닥을 파내야 한다.

당연히 농민들의 추가지출이 필요하고, 그만큼 빚은 더 늘어난다. 혹시 향후 날씨가 농사를 도와 평년작을 건진다고 해도 이미 농촌은 그동안 가뭄에 소득을 빼앗겼기 때문에 올 농사의 결산은 셈해볼 것도 없이 눈덩이 적자이고, 농촌은 지금 그런 '재해지구'가 돼버린 셈이다. 뒤늦게 가뭄지역에 정부 돈이 투입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돈이 농가의 개인부담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이상, 받은 만큼 빚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재해지역 선포'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당국은 '사상 최악'이니, '90년만의 처음'이니 말로써만 농민을 달랠 것이 아니라, 그런 선포가 가능한지부터 따져봐 주기 바란다. 이 가뭄이 홍수재해 이상으로 올 영농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있을 뿐 아니라, 공연히 농가가 빚을 지는 간접피해도 사상 최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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