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의 보험료 징수의 '묻지마 청구' 행태는 이 공단의 재정파탄에 대한 책임전가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경제난으로 문을 닫는 직장이 지금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거리로 쫓겨났던 이들 종사자들이 하늘에 별 따기로 새 직장을 얻기가 무섭게 놀고 있던 기간의 밀린 보험료가 가산금까지 보태 청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두 건의 사례라면, 보험가입자가 퇴사한 후 제때 신고가 안돼 빚어진 행정착오로 보고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료를 내라, 못 낸다' 물의가 시끄러울 정도라면, 건강보험공단이 파탄 위기 탈출을 위해 무리를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고 있다는 증거다. 결국 이 공단이 겪고 있는 고통을 서민에게까지 분담시키려는 책임 전가인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파탄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지난 감사원의 감사는 국민이 먼저 그 결과를 예상했었다. 정부·여당이 사전준비 없이 주먹구구식 통계와 자료를 근거로 의·약 분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원천적으로 적자가 불가피했고, 여기다 의보수가를 거듭 인상하면서 의사들을 달래는 바람에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그렇다면 적자원인이었던 의보수가를 내리던지, 원천적 적자 요인으로 지적됐던 병·의원의 부당, 허위 청구 등에 칼을 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4조1천700억 원이나 되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5년간 보험료인상으로 메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더구나 당정협의 과정에서 "이번에 못 올리면 선거가 있는 내년에는 더욱 어렵다"는 이유로 보험료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건강보험의 고통을 국민이 분담해야하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정책 모순에 대해 “본인부담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수가인하와 부당 허위청구 근절 등 재정안정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강력한 촉구가 국민들 가슴속에 앙금이 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수 더 뛰어 퇴직기간의 보험료청구는 의보행정이 얼마나 엉성하게 돌아가는 지를 가늠하게 하는 사건이다. 이 보험료는 사실은 안 낼 돈이며, 따지고 보면 퇴직, 취직, 또 퇴직의 악순환을 겪고 있는 현 경제난의 희생자들이 부담할 돈이다. 봉급에서 자동으로 떼어지는 보험료를 안내겠다고 버틴다고, 징수하지 못한 일이 없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는가. 차라리 65만 명이나 된다는 '소득이 있으면서 건강보험을 한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을 '색출' 하길 바란다. 이들 건강보험 무임승차자 가운데 1억원 이상인 사람도 1천3백89명이나 된다는 기가 찬 사실만으로도 서민은 너무 억울하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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